'밀턴 프리드먼'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06 계몽주의와 경제학 4- 케인스와 프리드먼의 충돌 (7)
  2. 2009/02/23 공짜 점심은 없다 (10)
전에도 썼지만, 현대 경제학의 두 가지 큰 흐름은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입니다. 이 두 학파의 태두인 케인스와 프리드먼은 공황극복을 위해 전혀 다른 처방을 내놓습니다. 케인스는 공황은 수요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가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대규모 사업을 벌여 수요를 일으켜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에 비해 프리드먼은 공황은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줄였기 때문에 발생했고, 따라서 공황을 극복하려면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늘려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금리가 중요한 이유는, 금리가 낮아야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이죠.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케인스가 저금리 정책을 경제위기의 해결책으로 내놓지 않은 이유는 1930년대엔 이미 금리가 매우 낮았고, 따라서 통화량을 늘려 금리를 더 낮추는 것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에 비해 통화주의를 주창한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의 시장개입을 끔찍하게 싫어했고,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었겠죠.

보통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정부는 케인스와 프리드먼의 충고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두 가지 해결책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죠.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려 열심히 통화를 공급하더라도, 정부가 대형 국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시중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즉, 이 두 가지 정책의 특성상 둘 중 하나만 써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작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을 경험한 미국 정부는 급한 마음에 두 가지 정책을 함께 추진합니다. FRB 의장 벤 버넝키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통화량을 대폭 늘려 금리를 0%에 가깝게 끌어내립니다. 그와 동시에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엄청난 양의 국채를 발행해서 부실기업 지원 및 경기부양에 예산을 퍼부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느낀 위기의 강도가 워낙 셌기 때문에, 안전자산을 찾는 자금이 미국 국채로 흘러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 국채가 워낙 인기가 높으니 이자를 조금 줘도 발행에 문제가 없었고, 따라서 미국 정부가 대규모 재정 적자를 내도 시중 금리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경제가 조금 살아나는 기미가 보이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미국 국채에 투자해봤자 이자가 1% 나올까 말까 한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차라리 조금 불안하더라도 다른 곳에 투자하자"는 심리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죠. 작년 말에는 경기 전망이 안 좋았기 때문에 미국 국채 말고는 투자하기가 꺼려졌는데, 지금은 경기가 좋아지면서 안전해 보이는 투자처가 많이 생겨났고, 따라서 자금이 미국 국채 시장을 떠나면서 국채 금리가 올라간 것입니다.

문제는 금리가 올라가면 시중금리가 오르고, 시중금리가 오르면 모기지 금리도 따라서 오르기 때문에 조금 회복되는 듯 보이던 주택시장이 다시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즉, 경기를 살리려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경기 부양책을 썼는데, 그 과정에서 금리가 오르면서 경기가 다시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는 말이죠.

미국에서 나타나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엇박자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앞으로 경기가 완전히 살아날 때까지 계속 위험요소로 남을 것입니다. 물론 1년도 안 되 경기가 살아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라는 두 가지 강력한 약물을 한꺼번에 처방했기 때문이지만, 그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미국 경제의 흐름을 보며 불안한 또 다른 원인은 지금 미국 정부와 FRB가 보이는 태도가 결국 이번 사태를 몰고 온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앨런 그린스펀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린스펀은 경기의 순환이라는 기본 질서를 무시하고, 이성의 힘으로 불황을 없앨 수 있다는 듯 통화정책을 썼기에 결국 미국은 20년치 불황을 몰아서 겪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이성이 아직도 경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 정부와 FRB는 경제 정책을 잘 쓰면 이번 경제 위기를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는 듯 강력하게 경기 회복책을 쓰는 중입니다. 즉, 그린스펀의 실수가 남긴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이죠.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계몽주의자들의 생각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산산이 깨졌습니다. 이제 인간이 원하는 대로 자연을 이용해도 된다는 태도는 설득력을 잃었고, 자연을 보호해가며 경제를 발전하려면 자원을 아껴쓰고, 싼 석유가 있어도 대체 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지는 중이죠. 즉, 21세기인이라면 "내가 지식이 많으니까 상대방을 착취의 대상으로 봐도 된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아무리 내가 똑똑해도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경제학은 워낙 젊은 학문이라 경제학자들은 아직도 계몽주의자들처럼 이성의 힘에 의지해 욕심을 절제하지 않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에게는 "경제 위기가 닥쳤으니 지나친 탐욕이나 과시적 소비에 대해 반성하고 건전한 소비생활을 회복하자."라는 주장이 불필요한 도덕주의로 들리고, "국민이 소비를 늘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정책을 잘 쓰기만 하면 아무런 희생 없이도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라는 말이 진리로 들리겠죠.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일반 학문에서 계몽주의가 도태한 것은 많은 지식인이 이성을 맹신했다가 이성의 한계를 절감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번 경제위기의 결과에 따라 경제학계에도 반성과 방향전환의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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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공짜 점심은 없다

경제 2009/02/23 18:49
이번 경제 위기로 인해 사라질 운명에 처한 세 개의 금융기관이 있으니, 직접 자금을 조달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투자은행 (Investment bank), 은행에서 장부에 드러나지 않는 거래를 하기 위해 세운 구조화투자기관 (SIV, Structured investment vehicle), 그리고 헤지펀드입니다. 이 중 헤지펀드의 몰락은 조금 의외인데, 원래 헤지펀드라는 말 자체가 양쪽에 돈을 걸어 위험을 회피한다 (hedge a bet)는데서 왔고, 따라서 헤지펀드는위기 상황에서도 안전해야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헤지펀드는 세계적 경제위기가 닥치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고, 투자자들의 환매요구가 거세지면서 몇몇 헤지펀드가 청산되는 등 고전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이번 사태로 모든 헤지펀드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헤지펀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은 바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헤지펀드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양방향으로 동시에 투자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 경제 위기가 닥쳐서 주가가 떨어졌다면, 주가가 오르길 기대하고 주식을 사들이면서, 동시에 위기가 심해질 것에 대비해서 그 나라 통화를 팔아버립니다. 만약에 경제 사정이 좋아진다면 예상대로 주가가 오르면서 수익을 올리고, 통화 부분에 대해서는 손해를 보겠지요. 반대로 경제 사정이 계속 나빠진다면 주식에서 손해를 보지만 통화 부분에서 이익을 올립니다. 따라서 예상이 빗나가도 손해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위험을 피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투자를 양방향 (오르는 쪽과 내리는 쪽)으로 동시에 할 때, 투자금액이 비슷하다면 한쪽에 수익이 나도 다른 쪽에서 까먹어서 결국 수익률은 높지 않습니다. 만약 한쪽으로만 많이 투자한다면 이익이 날 땐 크게 나겠지만, 예상이 어긋나 손해를 본다면 손해를 만회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결국, 이런 방식의 헤징은 손실을 만회할 장치를 마련하는 대신, 이익도 줄여야 하죠.

같은 상품 (또는 비슷한 상품)이 다른 가격으로 거래될 때, 그 가격 차이를 이용한 거래는 위험을 회피하는 또다른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국채는 시장에 방금 풀린 채권 (on-the-run)과, 몇달 전에 풀린 채권 (off-the-run)의 가격이 다릅니다. 새로 나온 채권이 유통이 더 잘되기 때문에 조금 더 비싸기 때문이죠. 하지만 몇년 지나다 보면 몇달 정도 차이는 무시되고, 결국 두 채권의 가격이 같아집니다. 따라서, 새로 나온 채권을 short(매도)하고, 몇달 전에 나온 채권을 long(매수)한다면, 나중에는 두 가격의 차이에서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arbitrage거래입니다. LTCM도 이러한 아르비트라지 거래로 많은 수익을 올렸죠. 하지만 arbitrage 거래는 이익을 많이 올릴 수록 경쟁자가 많아져서 수익이 줄어들고, 이익을 찾고자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기 마련입니다. LTCM도 처음엔 arbitrage 거래만 했지만, 나중엔 고수익을 얻기 위해 외환거래에도 손을 대는 등, 고유의 영역이 아닌 영역에 뛰어들었다가 몰락했죠. Arbitrage 거래는 거의 위험이 적지만, 그만큼 수익도 적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외환 거래에서 선물환은 위험을 피하는 거래지만, 그만큼 큰 수익을 얻을 가능성도 포기를 해야 합니다. 선물환 거래란 지금 환율을 기준으로 해서 거래를 하되, 현금의 교환은 나중에 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조선업체가 1년 후 선박 건조가 끝난 후 백만 달러를 받는다고 할 때, 1년 후에 달러화의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면 손해를 보겠죠. 따라서 지금 환율 + 원화와 달러화의 이자율 차이를 기준으로 삼아 거래를 한다면, 1년후의 환율이 얼마든 원화 수익을 확정할 수 있죠. 하지만, 선물환 거래를 하고 나서 1년 후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진다면, 조선업체는 큰 이익을 얻을 기회를 잃는 셈입니다. 이는 외국에 투자하는 펀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환헤지를 한 펀드는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해를 방지함과 동시에 환율 변동으로 인한 이익도 포기하는 셈이죠. 실제로 최근에 원화 가치가 떨어져 외국 펀드의 투자 손실분을 만회한 분들도 있지만, 환헤지를 했기에 원화 가치 하락의 이득을 전혀 얻지 못한 분도 많다고 합니다.

결국, 금융에서 고위험 고수익, 저위험 저수익이라는 원칙은 거의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첨단 금융 공학"을 이용했기에 저위험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금융 상품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 은행, 이 말을 믿고 금융 상품을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금융상품이 특별히 수익률이 좋다면, 이는 이 상품이 손해를 볼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후순위채가 대표적인 예인데, 요즘 저금리 시대라고 해서 7%대의 이자를 주는 후순위채권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전에도 썼지만, 후순위채권은 은행이 망하면 전혀 투자금을 찾을 수 없는 위험한 상품입니다 (그에 비해 일반 예금상품은 어느 한도 까지 원리금 보장이 되기에 훨씬 더 안전하죠). 물론 은행의 재정건전성이 좋다면 후순위채도 안전하겠지만, 이렇게 안전한 후순위채권은 금리가 7%대로 높을 리가 없겠죠.

시카고 학파의 태두인 밀턴 프리드만은 "공짜 점심은 없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라는 말을 즐겨했다고 합니다. 모든 일에는 댓가가 따른다는 말인데, 당연한 듯 싶으면서도 쉽게 잊게 되는 진리입니다. "환율 변동의 위험도 피하고, 이익도 얻으면서 안전한" KIKO나, "공짜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 인식된 일본 기업의 우선주 (preference share)가 결국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은,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금융 거래를 하기에 앞서, "혹시 이 상품은 공짜 점심은 아닌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공짜 점심은 언젠가 배탈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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