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청와대와 군이 사고를 보는 시각이 달라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북한의 공격이란 증거가 없다."라는 입장인 데 비해, 군은 "북한의 공격일지도 모른다."라는 태도입니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청와대는 북한을 원인에서 제거하려 하고, 군은 북한을 원인의 하나로 남겨 두려고 하는 점에서 차이가 큽니다. 이러한 의견 차이는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북한 어뢰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자 청와대에서 "VIP"의 의견을 언급하는 쪽지를 보내 이를 수정하도록 지시한 데서도 드러납니다.

북한 관련 의혹은 군만이 아니라 보수 언론에서도 제기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보수 언론은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해 침몰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보수 언론과 죽이 잘 맞던 청와대는 이러한 가능성을 극구 부인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청와대와 군, 보수언론의 의견 충돌을 이해하려면 한국의 보수층을 구성하는 두 가지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의 보수는 해방 이후 친미, 반공을 기치로 내세운 이승만 정부에서 출발합니다. 이러한 보수층은 6.25를 겪으면서 반공의 중요성을 뼛속까지 느꼈고, 공산주의가 아니라 콩사탕만 빠는 사람도 빨갱이로 몰 정도로 경직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들에게 육영수 여사 피살, 아웅산 사건, 칼기 폭탄 테러, 서해 교전 등은 북한이 여전히 우리의 철천지원수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이처럼 반공, 반북한을 중요한 이념으로 생각하는 보수층은 박정희 정권의 출현을 반겼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 출신이고, 반공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죠. 이들에게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 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고문을 해서라도 간첩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박정희 정권은 반공과 함께 경제발전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합니다. 당시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한 한국에서 유일하게 경제를 이끌 능력이 있던 것은 정부뿐이었죠. 따라서 60-70년대의 경제발전은 정부가 끌고 기업이 따르면서 진행되었습니다(이러한 경제발전 방식에 대해선 장하준 교수가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잘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경제적 성과를 내고, 세계적인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구도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은 정부와 맞먹는 힘을 발휘하게 되면서 정부가 주도권을 잃은 것이죠. 특히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재벌이 정부에 맞설 이론적 근거가 생깁니다. 신자유주의는 쉽게 말해 시장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해선 정부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에서 레이건-클린턴 정부, 영국에서 대처-블레어 정부의 경제 정책의 바탕이 되었고, 한국에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90년대에 세계적으로 금융자본이 성장하면서 정부 대 기업의 관계는 기업이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됩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죠.

현대그룹에서 CEO를 지낸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제 정부는 국민의 정부도, 국민이 참여하는 정부(참여 정부)도 아닌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부라면 저소득층 지원 예산을 깎아서라도 4대 강 사업을 벌여 대기업에 새로운 수익원을 공급해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대기업 회장이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대통령이 특별 사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줘야겠죠. 권력은 시장이 쥐고, 시장은 몇몇 대기업이 독점하니 이러한 대기업들이야말로 진정한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죠.

기업이 수익을 많이 남기려면 사회가 안정돼야 합니다. 사람들이 불안감이 없어야 돈을 많이 쓰기 때문이죠. 특히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외국에서 돈 빌리기도 어렵고, 주가도 내려가기 때문에 매우 안 좋습니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부는 남북관계를 안정되게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최소한 남북 관계는 좋아지리라는 예상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의외로 북한을 자극하는 태도를 보이며 남북관계를 긴장상태로 끌고 갔습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정말 북한과 대치하기 원해서가 아니라, 툭툭 말을 내뱉는 이명박 대통령의 특성상 의도와 다르게 북한의 자존심에 상처주는 말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은 잘못을 깨달았는지 북한과 관계 정상화에 나선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함이 침몰했습니다. 비즈니스 프랜들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북한과 연결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우리 군함을 공격했다면 이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이고, 곧 주가의 폭락과 환율의 폭등, 더 나아가 전면전으로 말미암은 경제의 붕괴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 완전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북한의 공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보수층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들은 "북한은 우리의 철천지원수"라는 시각으로 모든 사태를 보기 때문에 이번 일도 당연히 북한이 저지른 일로 생각합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라면 이런 사태에서 북한에 대해 "무력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연계 가능성을 언급한 국방장관의 입조차 막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이기에 대통령으로 뽑아준 이들로서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일이죠.

이처럼 한국의 보수층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북한을 보는 태도에서 이념 보수와 경제 보수가 뚜렷이 구분됩니다. 이념 보수는 경제가 파탄 나도 북한을 공격하기 원하고, 경제 보수는 북한이 무슨 짓을 하든 경제를 위해 덮고 넘어가기 원합니다. 이번 천안함 사고는 두 세력 간의 간격을 확인하게 해준 중요한 계기죠. 이러한 두 집단 간의 차이가 다음 대선에서 어떤 형태로 드러날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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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부터 "중도 실용노선"을 추구한다고 누차 밝혔습니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최소한 이념에 얽매이지 않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리라는 기대가 많았죠. 이러한 근거에서 많은 사람은 그가 남북관계를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으리라고 예상했습니다. 북한의 위협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기업이 실적에 비해 주가가 낮은 현상)의 주요 원인이고, 전쟁의 가능성이 커진다면 경제 전체에 커다란 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막상 취임한 직후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여러 차례 표시했고, 결국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 중입니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10년에 걸쳐 곱게 차려놓은 남북관계의 밥상을 보수 이념에 얽매어 발로 차버린 셈이고, 이로 인해 경제도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본다면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으로 "중도"가 아니라 "극우"에 가까운 성향을 보입니다. 진정한 중도였던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도 이명박 정부가 훨씬 오른쪽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색깔에 대해선 논쟁이 많지만, 좌파가 "노무현 정부는 좌파가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우파도 "노무현 정부는 우파가 아니다"라고 부정한다는 점에서 중도파로 분류해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성향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보수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신자유주의를 따를 가능성이 크겠죠.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규제철폐, 무역장벽 제거, 사회 내부의 경쟁 강화 등 신자유주의자 같은 말을 많이 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노선을 추구한다고 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명박 정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자유주의와 전혀 다른 색깔을 보여 많은 사람을 당혹케 합니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서민에게 꼭 필요한 물품의 가격이 함부로 오르지 않도록 단속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는 정부의 52개 생활필수품목 지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정부의 발표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이 52개 품목의 가격 (이른바 MB 물가 지수)은 평균 물가 상승률 보다 더 많이 올랐고, 정부는 시장에 굴복한 듯 MB 물가 지수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물가를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발언만큼 신자유주의에서 먼 발언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데, 정부가 물가를 관리한다는 말은 시장의 가장 중요한 자유를 뺏겠다는 말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부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가깝지만, 부분적으로는 신자유주의와 전혀 다릅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은 과연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살아온 환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시절 현대에 입사했고, 전두환 정권에서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가 됩니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사회생활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둔 시기는 바로 한국의 개발독재시기였죠. 이 시절 한국의 대통령은 정부를 통해 경제의 모든 분야를 마음대로 움직이며 경제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너무도 익숙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자 생필품 물가로 부터 콘테이너 지나는 길목의 전봇대 문제 까지 모든 일에 대해 사사건건 참견하며 해결사를 자처하였습니다. 즉, 머리로는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데, 마음은 경제에 개입하고 싶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지요.

게다가 작년 가을에 경제위기가 닥치자 이명박 대통령은 더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할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선 아무리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던 정부라 할찌라도 "경제를 살려내라"는 국민의 압박 때문에 시장에 개입할 수 밖에 없긴 하죠.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던 부시 행정부가 은행에 돈을 쏟아부으며 많은 금융기관을 국유화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번 위기 전 까지만 해도 신자유주의자가 국유화를, 그것도 금융기관의 국유화를 추진한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이처럼 정신적 지주로 받드는 부시가 신자유주의에서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자 이명박 대통령도 얼씨구나 하면서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은행에 대한 대출 압력이 좋은 예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번에 걸쳐 은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서라"고 압박했죠. 지금 경제의 큰 문제가 기업과 가계의 자금 부족이고, 따라서 대통령의 입장에서 은행이 대출을 꺼리는 모습은 매우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대출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자가 낮기 때문이고, 이자가 낮은 이유는 정부가 낮은 이자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즉, 정부는 은행에 이자를 낮추면서 대출을 늘리라고 동시에 요구하는데, 이는 가게 주인에게 "물건을 원가 이하로 많이 팔아라"고 요구하는 격입니다. 물건이 원가 이하인데 편의점 주인이 팔 수록 손해나는 물건을 뭣하러 열심히 팔겠습니까? 그저 파는 시늉이나 하겠죠. 지금 상황은 정부가 한국은행을 동원해 시장금리를 교란해 놓고는 "시장이 왜 이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라고 꾸짖는 셈입니다. 만약 인위적으로 이자를 낮추지만 않는다고 해도 시중의 자금 사정은 훨씬 나아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망치는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쉽게 "비즈니스 프랜들리" "경쟁력 강화" 등 신자유주의자의 이념을 따라 읆지만, 그는 경제정책을 레이건이 아니라 박정희에게서 배웠습니다. 따라서 그가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이념 (신자유주의)과, 그의 실제 행동 (시장 통제) 사이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죠. 문제는 그가 이러한 자기모순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고 하는데 결과는 뜻대로 나오지가 않고... 결국 "모든 것은 세계적 경제 위기와 촛불 때문이다"는 남의 탓 밖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가난한 자의 권리를 빼앗고 부자편만 든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단점을 빼다 박았고, 시장의 자율적인 질서를 무너뜨림으로 경제를 망친다는 점에서 개발독재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합니다. 쉽게 말해 두 극단의 문제점만 모아놓은 셈이지요. 이러니 한국이 세계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경제성적이 꼴찌 수준인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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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소득이 70년대에 비해서 더 늘었는가를 놓고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일부에서는 조금 늘었다고 주장하고, 일부에서는 70년대와 비슷하거나 감소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30여 년전과 지금의 소득을 정확히 비교하기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러한 논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중산층이 처한 곤경을 잘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아무도 "우리가 70년대보다 소득이 늘었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지금 소득이 70년대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이죠. 이는 영국이나 독일 등 다른 선진국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우리가 부모세대보다 더 가난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일반인의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이 3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폴 크럭먼 (Paul Krugman)은 자유주의자의 양심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라는 책에서  이처럼 미국의 중산층이 가난해지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현상의 원인을 공화당 정부의 정책에서 찾습니다. 그에 따르면 레이건, 부시, 아들 부시로 이어지는 공화당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감면하고, 노조를 탄압함으로 부자에게 유리한 경제 환경을 조성하였고, 이에 따라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일반인은 갈수록 적은 월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국가 경제는 계속 발전하였지만, 그 유익은 대부분 부자에게 돌아갔고, 일반인은 오히려 빈곤층으로 몰락해 버린 것이지요.

그는 이러한 공화당 정부를 뉴딜 정책을 써서 중산층을 일으킨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비교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조를 보호하였고,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권익을 확보하였습니다. 또한 2차대전이 일어나자 군수물자의 원할한 공급을 위해 노사분규가 없도록 정부에서 노동자의 월급을 정했는데, 이 월급이 꽤 많았기에 대부분의 노동자가 쉽게 중산층에 편입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뉴딜 정책으로 인해 미국은 짧은 시간 안에 중산층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크럭먼에 따르면 지금의 공화당 정부는 이러한 루즈벨트의 유산을 파괴하고, 양극화가 극심한 20세기 초의 미국 사회로 돌아가도록 노력 중이라고 합니다. 사실 미국은 이미 유럽에 비해 사회보장이 훨씬 약한데, 공화당은 의료보험 등의 영역에서 사회보장을 더욱 약화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결국 유럽은 경제가 좋건 안좋건 국민 대다수가 최소한의 안정을 누리는데 비해, 미국은 경기가 안 좋으면 해고될 위험도 크고, 해고가 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고, 또한 가족 중 환자라도 생기면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갈수록 악화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공화당도 과거에는 부자만 위하는 당은 아니었습니다. 공화당은 노예를 해방한 링컨 대통령을 배출한 당이고, 정치적으로 온건한 중도파가 지배하는 당이었죠. 아이젠하워나 닉슨 등 공화당 대통령들은 중도적인 정책을 폈죠. 하지만 문제는 공화당을 파고든 보수주의 운동 (movement conservatism)입니다. 이들은 60년대 반전과 대안문화, 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젊은이들과 흑인들의 움직임에 대해 반발했고, "우리가 백인의 이익과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켜내겠다"고 자임하며 공화당을 장악합니다. 인종간의 갈등을 자극하는 전략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었고, 나중엔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이러한 보수주의 운동의 좋은 예죠.

이와 함께,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던 미국 남부는 민주당이 경제적 평등 뿐 아니라 인종간 평등을 강조하며 흑인의 인권 보호에 나서자 공화당 편으로 돌아섭니다. 이들은 실제로 공화당이 자신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없지만, 공화당이 내서운 "백인의 이익과 전통적인 가치관"이라는 구호는 선거때 마다 통했고, 따라서 공화당은 남부의 고정표를 바탕으로 많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죠. 이렇게 공화당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미국은 점차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해졌고, 30년간 중산층의 삶이 거의 나아지지 않거나 오히려 삶의 질이 더 떨어졌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불행한 역사가 이제 끝날 기미가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공화당이 기반으로 삼는 인종간의 갈등이 점차 약화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흑인인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다는 사실만 놓고 봐도, 흑인에 대한 반감이 과거보다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여론조사를 해봐도, 과거에는 미국인의 50% 이상이 흑인과 백인의 결혼에 대해 반대했는데, 지금은 이러한 비율이 대폭 줄었다고 합니다. 물론 여전히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러한 사람의 비율이 줄었다면 보수파가 정치적 기반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볼 수 있지요. 실제로 공화당 내에서도 덜 보수적인 맥케인이 경선에서 앞서는 상황을 볼 때, 공화당 내에서 보수주의 운동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고 보입니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공화당 소속이지만 유색인종에 대한 존중, 환경 보호 추진 등 과거의 공화당과는 많이 다른 색깔을 내고 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 이러한 합리적인 정치인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보수주의 운동의 몰락을 보이는 증거이기에 반갑습니다.

이제 미국도 "잃어버린 3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가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선 정권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와야 되겠고, 공화당은 보수주의 운동의 유산을 탈피해야 겠지요. 올 미국 대선은 이러한 거대한 변화가 실현될찌를 지켜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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