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그레이엄은 주식의 가치를 바탕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현명한 투자자 (Intelligent Investor)를 쓴 현대 증권투자이론의 아버지입니다. 그가 쓴 "미국 기업은 살았을 때 보다 죽었을 때 더 가치가 있는가?" (Is American Business Worth More Dead Than Alive?)라는 글을 보면, 미국 기업은 상당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기에 사업을 정리하고 자산을 팔아 주주에게 분배하면 주주들이 많은 돈을 벌지만, 사업을 계속하는 한 주가가 너무 낮은 기현상이 주식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을 비판한 내용이 나옵니다.

만약 주식이 기업의 소유를 증명하는 문서이고, 따라서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면, 기업의 가치는 곧 주가에 반영되고, 그레이엄이 비판한 기업 자산과 주가의 괴리 현상은 발생하지 않아야 마땅하겠죠. 하지만 그레이엄이 이 글을 쓴 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기업은 사실상 기업가의 소유였고, 주주는 기업의 운영에 대해 별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든 왜곡된 구조였습니다. 이러한 구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실찌 모르지만, 사실 지금 한국의 기업, 특히 재벌을 보면, 실제 주주는 절반 가까이 외국인인데 비해, 기업을 좌우하는 세력은 10%미만의 주식을 소유한 창업자 집안이라는 점에서 50년전 미국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물론 "법적인 기업주인 주주"와 "실제로 기업을 지배하는 경영자"의 이중 구조는 오래가지 못하고,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기업은 주주의 소유라는 인식이 퍼지고, 따라서 경영자는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의 눈치를 보게 되고, 경영자가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바로 파면당하는 시대가 옵니다. 이것이 이른바 경제 민주화인데, 한국도 몇십년 안에 창업주의 아들이라 할찌라도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해임당하는 시대가 올찌도 모르죠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과 재벌 개혁에 대한 비판은 장하준, 정승일교수의 대담을 이종태 기자가 정리한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대기업 창업주의 아들까지도 벌벌 떨게 만드는 주주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물론 그 중에는 외국인 주주도 있고, 강남의 큰손도 있겠지만, 여러분과 저와 같은 일반인도 포함됩니다. 물론 어떤 분은 "나는 절대 주식 투자는 하지 않고, 따라서 주주가 아니다"라고 말할찌 모르지만, 현대 사회를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여러분의 돈이 주식에 투자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내시는 분은, 국민연금의 기금을 통해 주식에 이미 투자하신 셈입니다. 각종 보험 및 금융상품에 투자하신 분도 간접적으로 주식에 투자하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주식시장의 큰손은 공무원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같은 연기금이죠. 한국도 점차 일반인의 돈을 모은 연기금이나 펀드가 주식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19세기에 칼 막스 (Karl Marx)는 "자본은 자본가에게만 있고, 노동자는 자본이 없기 때문에, 기업은 절대적으로 자본가에게만 유리하게 운영되고, 노동자는 겨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봉급만을 받을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극빈을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20세기 들어서면서 노동자의 월급이 많아지면서 노동자의 월급이 자본이 되어 연기금과 펀드 등을 통해 기업에 투자되었고, 결국 노동자가 곧 영세 자본가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노동자의 자본가화는 노동자에게 기업 운영의 결실을 맛보도록 하고, 기업을 기업가의 소유가 아닌 일반 국민의 소유로 바꾸어 놓는 순기능도 있지만, 기업주와 노동자의 관계를 익명화함으로, 노동자의 근로환경을 악화하는 역기능도 있었습니다. 주주는 주가가 오르는 기업에만 투자를 하기 마련이고, 기업의 입장에서는 주가를 올려야 자금을 끌어올 수가 있죠. 그런데 주가를 올리려면 기업은 노동자의 노동력을 쥐어 짜내야 합니다. 그러다가 부족하면 노동력이 더 싼 나라로 옮겨가야죠. 노동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이러한 기업의 처사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빼앗는 불공평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기업가는 이렇게 해서라도 생산성을 올리지 않으면 이사회로부터 해임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선 제가 쓴 기업은 도덕적인 존재인가?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국가간에 장벽이 심하기에 국내 회사와 경쟁만 생각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다른 나라 회사와도 상품 시장 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만약 국내 회사의 주가가 빠르게 올라가지 않는다면 국내 투자가들은 미국 회사든 브라질 회사든 더 빠른 주가 상승을 약속하는 회사로 옮겨갈 테니까요.

막스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다고 보았지만, 사실 노동자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정도 이상으로 험하게 대하기가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판 자본가라고 할만한 워렌 버펫은 버크셔 헤더웨이라는 섬유공장을 인수했는데, 원래는 사업을 정리하고 자산을 팔아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이었지만, 회사를 살리려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해고할 수가 없어 계속 공장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전기 The Snowball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그에 비해, 요즘은 주식 투자가 전혀 얼굴을 대하지 않고 이루어지기에, 과거보다 더 야멸차게 노동자에게서 노동력을 쥐어짜내기 마련이죠. 97년 이전과 지금 노동의 강도를 비교해 보신 분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금방 아실 것입니다.

이처럼 자본가가 과거 처럼 특정 계급이 아니라 얼굴없는 대중으로 바뀐 지금, 결국 주식을 소유한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또다른 노동자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주식투자는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일반화하는 훌륭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정환님은 "좌파가 주식투자를 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을 통해 주식 투자라는 행위가 지니는 사회적 영향력을 환기시킵니다. 하지만 개인이 주식 투자를 안한다 할찌라도 연금 등을 통한 간접 주식투자가 직접 투자보다 훨씬 많은 상황에서 주식을 투자하지 않는다고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듯 싶군요.

주말은 쉬고, 월요일에 연재를 계속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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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미국 연방준비은행 (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자신의 회고록 격동의 시대 (The Age of Turbulence)에서 2000년에 에딘버러에 있는 아담 스미스의 무덤을 찾아간 미국 경제학자가 맥주 캔과 쓰레기를 제거한 후에야 아담 스미스의 낡고 수수한 묘비를 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즉, 자본주의의 기초를 놓은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고국 스코틀랜드에서 조차 한동안 잊혀진 인물이었다는 말이지요.

아담 스미스의 경제론은 당시 경제를 지배하던 중상주의 (Mercantilism)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중상주의는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을 국부의 핵심으로 보았고, 따라서 가능한한 귀금속을 본국으로 모아들여야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중상주의자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부가 관세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당시 유럽 각국 정부는 국부를 늘이기 위해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이를 비판하며, "금과 은이 많은 나라가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은 신대륙 발견으로 대단히 많은 은을 얻었지만, 그 결과 은으로 대부분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었기에 산업이 발달할 여지가 없었고, 결국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진정으로 부유한 나라는 국민이 효율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나라이고, 이러한 나라에서 정부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하지 말고 시장에서 손을 떼야 경제가 더 잘 돌아가는 법입니다.

아담 스미스의 이론이 받아들여지면서 19세기 유럽은 점차 정부가 규제를 풀고 시장에 간섭하지 않는 자유방임 (Laissez-faire) 정책이 대세로 자리잡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이러한 흐름은 뒤바뀌게 되고, 한동안 아담 스미스의 주장은 교과서에나 찾을 수 있는 과거의 이론으로 잊혀지죠.

자유방임 정책이 끝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된 중요한 계기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1929년 시작된 세계대공황으로 시장은 마비되고, 많은 국민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자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주장은 쑥 들어가고, "정부는 빨리 시장에 개입해 시장을 살려내라"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은 당연했죠. 이때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수요가 부족하다면 정부가 재정적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경제이론을 내놓았고, 실제로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통해 공공사업을 벌여 대공황과 맞섭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정부의 시장 관리 기능은 더욱 강화되죠. 정부는 "노사 갈등으로 파업을 하면 생산성이 떨어져서 전쟁에 이기는데 불리하니, 파업을 금지하는 대신 적정한 임금을 정부가 보장하고, 물가도 안정시키겠다"며 임금과 물가를 통제합니다. 또한 기업이 마음대로 사업을 벌이다 시장이 교란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기업의 활동을 규제합니다. 이러한 정부의 시장개입 전통은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지속되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0년대에도 물가와 임금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하지만 비상시에 도입된 조치들로 평시의 경제를 이끌기엔 무리가 따랐습니다. 특히 점차 발전하는 컴퓨터, 통신 기술을 이용한 혁신적인 경제활동을 펼치려면 정부의 개입을 줄여야 했죠. 앨빈 토플러는 1970년에 발표한 저서 Future Shock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새시대가 오리라고 예견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나오게 되었는에 이러한 패러다임의 핵심은 "기득권과 규제를 없애고,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어 무한경쟁을 펼침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아담 스미스가 주장했던 자유 시장 경제의 현대적 부활이지요.

1980년 로날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보수주의자들은 아담 스미스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파티를 했다죠 (Todd Buchholz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로날드 레이건이 아담 스미스의 경제이론에 기초한 정책을 펼 것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레이건 대통령은 정부의 시장 규제를 줄이고 사회 각 분야의 경제를 강화하는 레이거니즘을 추구하고, 이는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의 대처리즘과 함께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꾸어 놓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노조의 힘이 줄어들고 (다른 말로 하자면, 노동자가 누리는 권리가 줄어들고),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정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산층이 줄어들면서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 양극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우리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죠.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신자유주의는 단기간 내에 사회 전체를 바꾸어 놓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득권이라는 말은 본래 "이미 얻은 권리"라는 뜻으로, 꼭 나쁜 뜻은 아닙니다. 국민이 정부를 비판할 권리도 국민의 기득권이고, 노동자가 노조를 형성할 권리도 노동자의 기득권이죠. 과거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기득권이 잘 보호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득권 폐지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기득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었고, 어떤 집단이든 기득권을 주장하면 "기득권 세력"이라는 오명을 쓰고 국민 전체의 비난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노동자에게 미친 영향은 공무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공무원은 월급은 작고 빠르게 승진하기도 힘들어 별로 인기가 없는 직업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공무원이 가장 인기가 높은 직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그런데, 공무원이 이처럼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공무원의 근무여건이 대폭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공무원이 아닌 일반 노동자의 근무여건이 대폭 악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대부분의 직장인이 10년전 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 (특히 정년 보장의 영역에서)에서 일을 하는데, 이에 대해 크게 불평하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 만큼 신자유주의가 원하는 방향으로 노동자들의 인식이 바뀐 것이죠.

노동자의 권리가 대부분 무시되면서 일반 노동자의 근무여건이 악화되자, 사람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기득권이 정부에 의해 보장되는 몇몇 직업으로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공무원, 교사, 의사, 변호사 등이 그러한 직업이죠. 하지만 모든 기득권을 없애려는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영역까지 침투해서, 요즘은 공무원 개혁 (즉, 공무원이 누리는 권리의 축소), 사법개혁 (변호사의 숫자를 늘임으로 경쟁을 강화) 등의 논의가 진행중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인기가 높은 직업이라 할찌라도, 몇년 안에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심한 경쟁 속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겠죠.

내일은 주식과 신자유주의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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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잠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던 경제위기가 다시 심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계 은행의 부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각국 정부가 다시 시장에 개입하는 중이고, 금융 시스템의 위기는 실물경제의 위기를 낳고, 실물경제의 위기는 금융 시스템을 흔드는 악순환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는 몇몇 기업이나 은행의 문제가 아니고, 지난 수 십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구조적 결함에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기 원한다면 먼저 신자유주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려면 신자유주의가 극복하기 원했던 구체제 (ancient regime)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의 경제체제에 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중세의 기득권

태초로부터, 인간의 역사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사회란 곧 작은 집단의 모임이고, 각 집단은 자신이 사회내에서 전통적으로 누려온 권리와 특권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길드는 기득권 수호를 위한 집단의 좋은 예죠. 상인, 노동자들이 직업별로 조직한 길드는 각 직업의 영역에 활동하는 사람의 숫자를 조절하여 지나친 경쟁을 막았고, 이를 통해 이미 길드에 가입한 사람의 이익을 보호하였죠. 길드는 또한 정치지도자가 세금을 올리거나 규제를 강화할 때 전통적인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중세시대에는 대학도 기득권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대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university는 라틴어 universitas에서 나왔는데, 이는 학생과 교수의 조합을 뜻합니다. 즉, 학생들은 학생 조합을 만들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제한했고, 교수는 교수 조합을 만들어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했습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귀족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 귀족들이 직접 왕을 선출할 자격을 얻거나 (독일의 선제후 제도), 왕에게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영국의 대헌장). 사실 영국의 귀족들은 기득권을 너무도 잘 보호하였기에, 지금까지도 영국의 상원의원직은 귀족이 대를 이어 맡습니다.

이처럼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국가 관계에서도 볼 수 있는데, 유럽의 작은 국가들 (프랑스 남부의 모나코, 이탈리아 내륙의 산 마리노, 벨기에와 인접한 룩셈부르크 등)은, 근대에 들어 민족국가 (nation-state)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독립이라는 자신의 기득권을 잃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독립을 유지한 것입니다. 이탈리아 중부에 존재하던 교황령 (Papal states)은 19세기에 이탈리아 통일운동으로 주권을 상실했으나, 20세기들어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는 무솔리니의 제안 덕분에 바티칸 시국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이는 잠시 잃었던 정치적 기득권을 되찾은 예죠.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기득권

이처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의 전통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조직인 노조는 중세 유럽의 길드가 발전한 형태입니다 (지금도 영어권에선 screen actors guild 처럼 노조를 guild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예가 있습니다). 또한 기업이 특정 지역에서만 영업을 하고, 특정 지역에서는 영업을 하지 않는 등, 지역에 따른 기득권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러한 지역에 따른 기득권은 거의 사라졌지만, 소주만큼은 지역별로 제조 회사가 다른 전통이 살아 있죠. 상품의 유통을 봐도, 공장에서 만든 상품이 직접 소매상으로 전달되는 방식이 아니라 수많은 총판, 특판, 도매상을 거치는 방식이었고, 이러한 중간 상인들은 큰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벌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19세기 유럽이 정부의 규제 없는 Laissez-faire의 시대라고 하지만, 정부의 규제가 없을 뿐 경제 내부의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강력했고, 따라서 완전 경쟁체제는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기득권을 중심으로한 체제는 경제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지배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명문 대학 (이른바 Ivy League)들은 명문가의 자녀 중에서 학생을 선발하였고, 따라서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은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부모 덕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예일대학을 나온 조지 W. 부시가 그러한 예죠), 가난한 집안, 또는 소수인종 출신의 학생은 머리가 좋아도 좋은 대학에 가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20세기 중반까지 유지되지요. (이에 대해선 David Brooks가 지은 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Bobos in Paradise)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회 각 부분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정부의 통제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국가 고사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의사, 변호사, 교사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직업은 지금도 인기가 높은데, 이는 일단 정부가 설치한 진입장벽을 통과하기만 하면, 경쟁이 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은 사회 각 부분의 기득권을 줄이고 경쟁을 강화하는 추세에 따라 이러한 부분에도 경쟁의 요소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강하죠. 예를 들어, 변호사의 숫자를 늘이면 변호사의 기득권은 대단히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공무원도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공무원의 특권이 대단히 줄어들겠죠.

이처럼 정부는 사회 각 부분의 기득권을 줄일 수도 있고, 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정부는 각 부분에 대해 기득권을 인정하는 대신,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정부는 한 분야에 하나, 또는 소수의 기업만 허가하고, 다른 기업은 새롭게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전화를 걸려면 한국통신망을 써야 했고, 국내선을 타려면 대한항공을 타야 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자본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전화 분야는 AT&T가 독점하는 등 각 분야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많았습니다. 사회주의 경제를 표방하는 인도에서는 정부가 모든 경제활동에 대해 허가증을 요구하고, 허가증을 얻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기에 허가증 왕국 (License Raj)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 또는 전통적인 권리 때문에 각 분야에서 유지되던 기득권은 사회를 안정시키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순기능과 함께,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도 있습니다. 20세기 후반부의 세계는 기득권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신자유주의자가 주도하게 됩니다. 내일은 신자유주의의 발달과정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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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필요성

사회 2009/01/08 12:00
어제는 갑자기 하드 드라이브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글을 못 올렸습니다. 얼마전 Mupromo.com (맥용 소프트웨어를 일정기간 싸게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번들로 구입한 Drive Genius로 하드를 정리하다가, rebuild를 실행했더니 중간에 에러 메시지를 내면서 하드가 인식 불가 상태가 되더군요 (인터넷에 찾아보니 Drive Genius 쓰다가 문제 발생한 경우가 가끔 보입니다. 저만의 문제가 아니군요). 그런데 내장 하드가 인식 불가 상태가 되니까 컴퓨터 자체를 쓸 수가 없고, 컴퓨터를 쓸 수 없으니 컴퓨터를 고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만약 부팅 가능한 외장 하드가 있었다면 어떻게 손을 써 보았겠지만, 그렇지도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백업도 안한 하드에 디스크 유틸리티를 돌린다는 자체가 너무 위험한 짓이었지만, 당시엔 안일하게 '뭐, 별일 있겠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하드가 고장나서 데이터를 모두 날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더군요. 왜 평소에 백업을 안했을까 하고 후회도 되고... 사실 백업을 안한 이유는 게을러서라기 보다는 외장하드에 공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장하드가 320기가인데 외장하드는 200기가 정도라 백업을 할 엄두가 안났죠. 그래서 얼마전 2.5인치 500기가 하드 가격을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나중에 사서 백업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까, '돈 조금 아낄려다가 큰 낭패를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저런 시도와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내일 친구내 집에 가서 맥에 연결해 복구를 해보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쯤에 갑자기 해결 방법이 생각나 어떻게 어떻게 손을 써 보니 결국 되더군요. 그 덕분에 잠은 늦게 잤지만, 어쨌든 문제를 해결해서 마음은 편했습니다.

백업을 하지 않은 채 하드가 고장나니 내 신세가 꼭 위기에 빠진 월스트리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스트리트가 이번에 큰 위기를 겪는 중요한 원인은 바로 위험에 대한 대비 없이 위험한 거래를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CDS (credit default swap)는 부도시 부도난 기업의 돈을 대신 갚아 주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CDS를 발행하면 실제로 부도가 났을 경우를 대비해 돈을 모아놔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투자은행이 CDS를 발행하면서도 "에이, 설마 부도가 나겠어?"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대량의 부도 사태가 나자, 부도시 돈을 대신 갚아 주겠다건 회사들 마져 부도가 나면서 경제 전체가 큰 위험에 빠져버렸습니다. 이런 일은 CDS 등 파생상품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은행이 돈을 빌려줬다가 부도가 나면 위험에 빠지기 때문에, 빌려준 돈의 일정 부분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쌓아놓도록 합니다. 이를 대손충당금이라고 하죠. 보험회사는 만약 대규모 재앙이 발생해 보험금을 많이 지급할 경우를 대비해, 보험으로 받은 돈의 일정 부분으로 다른 보험사에 보험을 듭니다. 이를 재보험이라고 하죠. 만약 정부가 이러한 기준을 파생상품에 적용해 "CDS를 발행해서 들어오는 돈의 일정 부분을 부도에 대비해 적립해 놓으라"고 지도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몇년간 세계적으로 "규제 완화"라는 개념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부분에 정부 규제를 없애는 작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꼭 정부의 규제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기업이 단기간의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지나치게 위험한 사업을 벌이지 않도록 규제를 통해 기업의 활동을 조절합니다. 기업은 당장 이익이 줄어드니 기분이 나쁠찌 몰라도, 국가 전체로 볼 때는 꼭 필요한 규제도 많죠. 예를 들어, 많은 나라에서 건물의 면적당 수용 인원을 정하고 그 이상으로 사람이 숙박하지 못하도록 규정합니다. 집단 급식을 할 경우, 남은 음식에 대해 어떻게 처리할찌도 규제 대상이죠. 이러한 규제가 없다면 기업의 이익이 늘찌 모르지만, 화재가 나거나, 음식이 상할 경우 발생하는 큰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한 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정치적 흐름을 따라 규제가 늘었다 줄어드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처음 미국이 독립하였을 때는 이른바 "민주주의자" (democrats)들이 득세하여, 자본가들의 활동을 규제합니다. 하지만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는 북부의 자본가들이 득세하고 규제가 완화됩니다. 1930년대 대공황기에는 루즈벨트가 국민을 위한 정부를 표방하며 다양한 기관의 국유화를 추진하고, 가격과 임금을 통제합니다 (가격과 임금 통제는 닉슨 정부까지 이어지죠).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간섭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정치적 흐름이 바뀌면서 레이건 대통령은 시장의 자율 기능을 강조하여 규제를 철폐하고, 이는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도 동일하게 추구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의 철폐는 결국 경제위기를 불렀고, 그 결과 정부가 많은 금융기관을 국유화하는 사태를 낳았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은 지속될 전망입니다.

한국의 상황을 김대중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생활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1만 1125개 규제중 5439개를 2년만에 폐지하였는데, 노무현 정부는 규제철폐의 흐름은 이어갔지만, 부동산 등 몇몇 부분은 규제를 강화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대놓고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외칠 정도니 모든 규제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따라서 대부분의 규제를 없애려고 노력 중이죠. 문제는 지나치게 규제를 줄이면 현재 진행중인 경제 위기 같은 큰 혼란이 쉽게 닥친다는 점입니다. 즉, 기업이 이익에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는 부분을 정부가 보고 올바르게 지도해야 하는데, 정부가 그런 역할을 포기한다면 국가적으로 보면 손해가 더 크다는 뜻입니다.

제 하드 드라이브는 쉽게 다시 살아났지만, 국가 경제는 한 번 위기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큰 피해를 봅니다. 이러한 불행을 막으려면 적절한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죠. 이명박 정부도 모든 규제를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규제가 진정으로 필요한가에 대해 더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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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정부와 시장

정치 2009/01/04 21:20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도 1년이 다되어 갑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국민은 왜 그가 경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부분 점수는 0점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경제에 대한 무지가 드러나는 그의 발언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정부의 정책을 생각한다면, 세계 경제가 좋은 상황이었더라도 그가 경제를 잘 이끌었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경제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한 의미는, "경제 논리를 사회 전체에 적용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이고, 정부는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조직입니다. 국가는 국민이 모여 사는 사회이고, 따라서 경제, 정치, 문화 등 다양한 현상이 벌어지는 무대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은 어느 한 분야만을 대변하면 안되고, 사회 전체의 조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 대통령"을 추구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사회 전체의 조화가 깨어진 것은 당연하죠.

예를 들어, 교육의 영역을 봅시다. 교육은 인간의 성품을 훈련하고, 지식을 공급하고, 유용한 인간으로 살도록 준비하는 등 다양한 의미를 담은 과정입니다. 그런데 교육을 경제의 원리인 "경쟁을 통한 효율성 추구"만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교육에 경쟁을 강화해야겠죠.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무한 경쟁의 장으로 바꾸어 놓길 바라고, 국제중, 자사고 등은 이처럼 경쟁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문제는 교육에 경쟁이 없을 수 없지만, 경쟁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다른 요소, 즉 공동체 의식이나 희생정신을 가르칠 여지가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거엔 경쟁이 교육의 한 가지 요소였는데, 경제 대통령이 등장하고 나니 교육에 경쟁이라는 하나의 관점만 남았고, 이로 인해 교육이 비교육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의료부분을 봅시다. 과거엔 "의술 (醫術)은 인술 (仁術)이다"는 말로 의료행위가 인간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의료를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돈 많은 사람은 좋은 치료를 받고, 돈 없는 사람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그러나 4천만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받고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면 불행한 일이겠죠.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는 의료보험제도를 통해 모든 국민이 의료비를 지원 받도록 돕습니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의료를 경제의 논리로 해석해 의료보험제도를 바꾸거나 없애자는 주장이 들린다는 점입니다. 말로는 의료 선진화, 의료 산업 육성 등 그럴 듯한 핑계를 대지만, 결국 가난한 사람은 싸구려 병원에 가고, 돈 많은 사람은 좋은 병원에 가도록 바꾸겠다늦 뜻이죠. 그렇다면 의술은 인술이 아니라 상술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에 따른 세금 징수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많은 경제학자는 소득에 따라 과세비율이 달라지는 제도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열심히 경제논리에 따라 돈을 벌었으면 그 돈을 지키고 살아야지,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은 경제 논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부가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빈곤층을 돕는데 쓰지 않는다면, 부자는 계속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해집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미워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두려워하는, 모두가 불행한 사회가 되겠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부자에 대한 감세를 경기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내어 놓았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수입이 줄어들면 결국 빈곤층 지원비용이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부자에 대한 감세 정책은 빈부의 격차를 벌여 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경제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아닌, 경제 논리를 사회 모든 분야에 적용하는 대통령입니다. 즉, 국가를 위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시장의 대변인이 되겠다는 뜻이지요. 이는 시장을 사회 전체로 확대하기 원하는 신자유주의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가 있죠.

대단히 역설적으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경제논리를 적용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 대해선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즉, 특정 경제 현상에 대해 "이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꾸짖는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대통령의 꾸짖음은 다른 분야에서는 통해도 경제에서는 통하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대입제도를 바꾸면 따라오지 않는 수험생이 없지만, 정부가 환율 정책을 바꾼다고 시장 참가자가 정부의 정책을 따라오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시장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정부는 경제 정책에 대해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시장을 완전히 정부의 권위하에 두고, 정부의 말을 따르지 않는 시장 참가자를 처벌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80년대까지 한국 정부가 취한 방식이고, 지금도 많은 후진국 정부가 취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정부가 은행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면 80년대식 관치금융이 부활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하게 은행을 쥐고 흔듭니다. 하지만 이는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고, 특히 한국의 은행들이 대부분 외국인이 대주주라는 현실을 볼 때, 언젠가는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을 사거나 아예 투자금을 회수해 한국을 떠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큰 태도입니다.

두번째로, 정부가 시장에 하나의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푸는 방식인데, 정부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이기기는 매우 힘듭니다. 1992년 환율을 높게 유지하려고 외환시장에 개입했던 영국 은행의 실패가 이를 잘 보여주죠. 강만수 장관도 외환시장에서 달러 풀었다가 환율은 잡지 못하고 외환보유고만 축냈습니다 (물론 본인은 "원없이 돈 써봤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지만). 만약 시장에 개입하려면 작전을 치밀하게 써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겠죠. 그런데 이명박 경제팀에는 그러한 계획을 짜고 집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안보이는군요. 결국 정부는 첫번째 방식 (권위에 의한 시장 지도)와 두번째 방식 (시장 직접 개입)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시장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지금 어느 쪽으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은 경제 논리를 무시함으로 망치고, 사회의 다른 부분은 경제 논리를 적용함으로 망치는 더블 플레이를 범할 위험이 큽니다. 시장의 논리를 사회 전체로 확대하려는 신자유주의가 쇠퇴하는 끝물에, 신자유주의를 고수하려는 대통령이 이끄는 나라에 살려니 참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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