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명박 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바로 "위기"입니다. 딱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처럼 시장이 들썩이고, 국민의 심리가 요동하는데도 정부는 "펀더맨탈에 문제 없다"는 말로 모든 의혹을 잠재우려고 하죠. 정부와 이심전심인 조선일보도 위기설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지금의 상황을 "이유 없는 열병"(즉, 시장은 요동치지만, 요동칠 이유는 없다는 뜻)이라고 정의했겠습니까.
그런데 보수언론이 정부와 교감을 통해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외국 언론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최근 자주 실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실은 Sinking Feeling기사였고, 이에 대해선 이미 정부와 조선일보가 합작을 해서 반박을 했죠. 그런데도 뉴욕타임스 등 외국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가 끊이지 않자 조선일보가 새로운 논조를 선보였습니다.
워싱턴 지국장인 양상훈씨의 칼럼인 미국, 너나 잘하세요, 제발 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국인데, 왜 남의 나라 경제까지 참견하느냐? 주제넘은 짓 하지 말아라"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일어난 것과, 월스트리트 저널이 한국의 위기 상황을 분석해 보도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떠한 처지든지, 미국내에 있는 신문이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는 국가의 상황을 보도하는 것이 문제는 아닌 것이지요. 예를 들어, 지금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에 있는 조선일보도 러시아,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의 경제위기에 대해 열심히 보도중입니다. 만약 아이슬란드 모 일간지가 조선일보에게 "지금 한국 경제가 위기인데, 한가하게 남의 나라 경제나 걱정하고 있을 여유가 있냐? 너나 잘해라"고 조소한다면, 조선일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조선일보의 3단 논리
한국 경제위기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에 있는 언론사다
미국은 세계에 경제위기를 전파한 장본인이다
따라서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경제위기를 보도할 자격이 없다
조선일보의 잘못은 개인 (또는 사집단)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출발합니다. 조선일보가 보기에 미국은 하나이고, 따라서 미국내의 모든 언론사, 기업, 개인 등은 미국이라는 국가와 분리해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는 극단적인 국가주의입니다. 이는 얼마전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의 경제위기를 보도했을때도 나타났는데, 당시 조선일보 애독자들은 "망해가는 나라인 영국이 한국을 무시한다"는 식의 댓글을 많이 달았습니다. 이들이 보기에 영국 내의 모든 언론은 영국이라는 나라와 분리할 수 없기에,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는 곧 영국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국가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세계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내의 경제학 교수라면, 미국의 상황이 어떻든 "이 나라의 경제는 이런 점이 문제고, 저 나라의 경제는 저런 점이 문제다"라고 지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특히 언론은 정부와 상관 없이, 자신들이 판단해서 진실이라고 여겨지면 보도해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조선일보의 논지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결국 "지금 상황은 진정한 위기가 아니고, 외국이 우리나라를 깔보기에 괜히 괴롭히는 수작이다. 따라서 나는 한국인으로서 이러한 부정적인 외신에 대해 귀를 닫아야 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의 언론이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보도를 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가 안 좋은 상황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논리를 왜곡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면 위기가 안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있다면 위기의 원인도 있는 법이지요. 그런데 정부와 조선일보는 "위기는 있지만 위기의 원인은 없다"느니 "경제위기가 발생한 나라의 언론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등의 해괴한 논리로 위기를 직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문제는 외신의 보도가 아니라 달러 대비 1500원 가까이 올라간 환율이고, 연기금 동원해도 세자리수로 돌아오지 못하는 주가입니다. 외신은 무시해도 좋으니 제발 이러한 현실은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언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심화 (2) | 2009/02/16 |
|---|---|
| 이명박 대통령 G20 연설에 대한 각국 언론의 반응 (9) | 2008/11/16 |
| 위기의 본질은 외신이 아니라 시장이다 (2) | 2008/10/29 |
| 원인이 없는 경제 위기? (4) | 2008/10/24 |
| 조선일보가 파이넨셜타임스를 공격하는 진짜 이유 (3) | 2008/10/17 |
| 천수답 정부의 인터넷 대전 (0) | 2008/06/1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