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들어,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 열매를 맺으면서 사회 전반에 느슨한 분위기가 찾아오고, 심각하던 한국인의 얼굴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유머를 즐기고 유머를 따라하는 사람의 숫자는 점차 늘어갔습니다. 따라서 9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 유머가 가장 발달한 시기였고, 사회가 유머에 대해 매우 관대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잘 익은 과일이 쉽게 썩듯, 한국인의 유머에 대한 사랑도 쉽게 변질되었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선진국에서 보기 쉬운 냉소적인 분위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유머를 열심히 따라할 뿐 아니라 그러한 노력에 대해 쉽게 비웃었습니다. 이른바 "썰렁하다"는 말은 이때부터 유행한 표현이죠. 그전까지는 누가 재미 없는 유머를 해도, 그냥 어색하게 넘어가고 말았는데, 이제는 "뭐야, 썰렁하잖아~" 하고 꾸짖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함부로 유머를 남발하는 사람은 '썰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고, 썰렁한 사람은 가장 cool 하지 않은 사람이자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비난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국인은 썰렁하다는 핀잔을 들을까봐 사람들에게 유머를 표현하지는 못하고, TV에 나오는 유머는 자신이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잠자코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지요. 남을 웃기기 원하는 마음은 인간의 중요한 본능인데, 이러한 본능을 발휘하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은 우리 모두의 손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소비사회라고 하지만, 유머 마저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자의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현실이 슬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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