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머무는 곳에는 급식이 나오긴 하지만, 입맛에 잘 맞지 않아 직접 요리를 해 먹을 때가 잦습니다. 과거엔 스파게티를 해 먹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질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 보고자 냉동 피자를 사다가 토핑을 얹어서 오븐에 구워 보았습니다. 먹어보니 맛이 있긴 한데, 토핑을 추가하긴 하지만 공장에서 만드는 피자를 주원료로 한다는 사실이 찜찜하기도 하고, 돈도 아까워서 피자를 직접 만들어 먹어보려고 인터넷에서 피자 만드는 법을 찾아봤습니다.

Video Jug이라는 사이트에서 찾은 방법으로 피자를 만들어 봤는데, 먹을 만 하긴 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났습니다. 머릿속으로 이탈리아에 살 때 먹던 피자의 맛과 비교해 보니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죠. 물론 제가 피자 만드는 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피자 조리법에 담긴 철학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다시 찾아보니,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식 피자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연구한 사람의 피자 조리법 사이트가 나오더군요. 사실 우리가 익숙한 미국식 피자는 이탈리아식 피자와는 전혀 다른 맛이지만, 미국에도 20세기 중반까지 이민 온 이탈리아 사람들이 경영하는 피자리아는 이탈리아 피자의 참맛을 잘 보존하였기에 참고할만하죠(물론 지금은 이탈리아 이민이 거의 없고, 따라서 미국에서 진짜 이탈리아 피자를 찾기가 힘듭니다).

이탈리아 피자는 깔끔함과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재료도 복잡하지 않고, 맛도 깔끔합니다. 그에 비해 다른 나라의 피자는 맛이 상당히 복잡합니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맛있게 만들려면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복잡한 맛으로 솜씨의 부족을 감추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 음식 중에서도 물냉면은 깔끔한 맛이기에 주방장의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지만, 비빔냉면은 맛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솜씨가 없는 사람도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죠(하긴, 물냉면도 자극적으로 맛을 내면 솜씨를 감출 수 있긴 합니다. 그래서 요즘 분식점 등에서 나오는 물냉면은 매우 시고 단맛이 강하죠). 또한, 맛이 깔끔하면 그 자체로 포만감이 오기 때문에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선 사이드 디쉬를 팔지 못한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이겠죠. 예를 들어, 진짜 제대로 된 이탈리아 피자를 먹는다면 버펄로윙이나 셀러드바를 추가로 주문할 마음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과거에 먹던 이탈리아 피자의 맛을 되새기며, Jeff Varasano's NY Pizza Recipe에 나온 내용을 참고하며 피자를 만들어봤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초보자의 어설픈 요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피자의 참맛을 잘 보여주는 Margherita 피자는 조리법이 매우 간단합니다. 우선,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반죽을 엷게 편 위에 통조림에 든 토마토를 적절히 바른 후, 모짜렐라 치즈와 바질(basil) 잎을 얹고 오븐에 구우면 됩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드는 방법은 VideoJug를 참조하거나, Varasano의 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VideoJug의 방법은 매우 표준적이고 간단한 방법인데 비해, Vasarino의 방법은 자신감에 찬 개성 있는 방법입니다(예를 들어, Vasarino는 "요즘 나온 이스트는 미지근한 물이나 설탕 없이도 활성화한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의 설명과 다르지요).

VideoJug에선 토마토를 양파, 마늘과 함께 볶아 소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제 기억으로 이탈리아에서는 통조림 토마토를 그대로 반죽에 얹었습니다. Vasarino도 토마토를 소스로 만들지 말고 그냥 쓰라고 충고하더군요. 맛을 비교해 보니, 양념을 해서 토마토소스를 만들면 피자헛 같은 미국식 피자 맛이 나고, 양념을 안 하고 그대로 쓰면 이탈리아식 피자에 가까운 맛이 났습니다. 그리고 Vasarino의 페이지에도 나오지만, 재료를 많이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탈리아 피자는 빵의 부드러운 맛, 토마토의 시큼한 맛, 모짜렐라의 고소한 맛, 바질의 상큼한 향이 적절하게 섞일 때 참 맛이 나는데, 재료를 많이 얹다 보면 균형이 깨져 버립니다.


재료 중 바질은 슈퍼에서 화분 채로 사왔는데(2유로), 한달 째 잎사귀를 뜯어 먹었는데도 여전히 잘 자라서 기특합니다. 이걸 보니 다른 채소도 키워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군요. 모짜렐라는 한국에서는 비싼데, 여기선 실 중량 125g 짜리가 55센트(천원 미만) 밖에 안 합니다. 이거 하나로 세 번 피자를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재료비는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Vasarino의 설명에 따르면 피자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세 가지는
1. 고온을 낼 수 있는 오븐
2. 반죽을 빚는 기술
3. 이스트의 종류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쓰는 주방의 오븐으로는 250도까지 밖에 오르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피자를 만들기엔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고온으로 구워내면 2분이면 바삭한 피자가 완성된다는군요). 게다가 슈퍼에서 파는 이스트도 한 종류이기 때문에 좋은 이스트를 구할 방법이 없네요(시골이라 슈퍼마켓 찾기도 힘듭니다). 또한, 밀가루 반죽은 평생 처음 만들어 봐서 제대로 반죽을 하기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천원도 안 되는 재료비로 원하는 피자를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기쁩니다. 한국에서도 오븐만 있다면 재료는 조금 비싸더라도 구할 수 있을테니(모짜렐라는 큰 마트에서 판매할 것입니다. 바질은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듯 싶습니다), 원하신다면 피자 만들기에 도전해 보셔도 좋겠네요.

P.S. 어제 티스토리가 점검중이라 글을 못올렸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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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안녕하세요. "세상을 바꾸는 블로그"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지금 독일에 머무는 중인데, 회의가 있어 이탈리아 동쪽에 있는 페스카라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하게 됩니다. 오늘 떠나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내일 이탈리아에 갔다가 일요일 독일로 와서 월요일 이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행 때문에 며칠간 글을 못올림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가서 즐겁게 (?) 회의하고, 돌아와서는 다시 열심히 글을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imi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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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의 미래는?

경제 2008/11/19 02:49
유로 (Euro)는 15개 유럽국가에서 통용되는 돈으로, 유로화를 쓰는 국가를 묶은 유로존은 2007년 실질 구매력 GDP기준으로 미국을 앞설만큼 중요한 경제지역입니다. 이처럼 여러 나라가 하나의 통화를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이란 각국의 발행하는 양, 인플레이션의 정도, 정부의 재정적자와 채무, 그리고 경제상태와 신용도에 따라 가치가 다르기 마련이지요. 15개국이 하나의 통화를 쓴다는 말은 참여국 모두가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경제를 조심스럽게 운영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체제를 운영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대단한 믿음이 필요하죠.

2002년 1월 1일 부터 통용되기 시작한 유로화는 지금까지 문제 없이 잘 운영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상황이 원만하던 지난 6년간 유로화가 잘 유지되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유로화의 미래가 밝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로 유로화가 공식 출범하기 전에 벌어진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폭락과 이에 따른 European Exchange Rate Mechanism (유럽환율조정장치, 이하 ERM)로부터의 퇴출은 통화의 가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나라가 유로화에서 퇴출될 수 있음을 보이는 중요한 선례입니다.

ERM은 단일 통화를 도입하기 위해 유럽 각국간 환율의 변동폭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장치입니다. ERM 참여국들은 서로 환율을 연동하되, 변동폭을 어느 정도 허용합니다 (물론 유로화 출범이 다가오면서 변동폭이 전혀 없는 고정환율로 바뀌죠). 원래 이 제도는 1977년에 시작되었는데, 영국은 뒤늦게 1990년에 참가합니다.

ERM에 참가할 당시 파운드화는 독일 마르크화 대비 환율이 지나치게 높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일단 ERM에 참가한 이상 영국 정부는 높은 환율은 유지할 수 밖에 없었죠. 이러한 상황을 관찰하던 조지 소로스는 파운드화가 결국 약세로 돌아설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파운드화 공격을 준비합니다. 파운드화를 빌려 외환시장에 판 후,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파운드화를 되사서 빌린 돈을 갚고 차익을 얻는 수법을 쓰려는 것이였죠.

이런 상태에서 독일이 통일비용 지출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생기자 분데스방크 (독일 중앙 은행)는 금리를 인상합니다. 독일의 금리가 높아지자 마르크화 대비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ERM에 가입한 상태라 파운드화가 마르크화 대비 6% (허용 변동폭) 이상 가치가 떨어지면 안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불명예를 무릅쓰고 ERM에서 탈퇴하거나 아니면 시장에 개입해 파운드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할찌를 결정해야 했는데, 결국 후자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이때를 기다리고 있던 투기세력은 준비했던 파운드화를 일시에 시장에 내다 쏟고, 이로 인해 파운드화의 가치는 겉잡을 수 없이 떨어집니다. 다급해진 영국 정부는 금리를 10%에서 12%로 올리고, 시장에 개입해 파운드화를 대거 사들입니다. 모든 노력에도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자 그날 저녁 영국 정부는 ERM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즉, "우리는 더 이상 환율을 지켜낼 수 없다"고 항복선언을 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1992년 9월 16일 영국의 검은 수요일 (Black Wednesday)입니다. 이렇게 해서 영국은 ERM에서 빠졌고, 결국 유로화 출범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또는 참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로화 체제에 가입한 나라 중에서 경제규모가 크면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나라가 또 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죠. 이탈리아는 생산성이 워낙 낮은데다가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공적 부채가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뒤에는 풀리지 않는 이탈리아 사회 특유의 부패와 구조적 모순이 숨어있죠 (이에 대해선 집단 우울증에 빠진 이탈리아 사회 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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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년전 IMF는 이탈리아가 경제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유로화 체제에서 퇴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탈리아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 증거가 이탈리아의 높은 국채 이자율입니다. 유로존 각국의 국채금리는 독일의 국채금리를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17일 현재 독일의 국채 10년물 금리가 3.65%인데 비해 이탈리아는 4.65%로 이른바 Spread vs Bund가 +1.00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이탈리아 국채가 독일 국채에 비해 27%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금리차는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는 수준에 가깝다"고 합니다. 만약 이탈리아 경제가 계속 문제를 일으킬 때 독일은 이탈리아로 인해 유로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사태를 용인할까요? 아니면 영국이 ERM에서 퇴출되었듯, 이탈리아도 유로화에서 퇴출될까요? 그리고 이탈리아가 퇴출된다면 경제 규모는 작지만 국채금리는 이탈리아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그리스, 포르투갈 등은 어떻게 될까요? 이는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물론 유로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은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는 모습을 보며 유로화가 달러화를 대체할 기축통화로 작용하기를 기대하고, 특히 동유럽국가들이 대거 유로화에 참여하면 유로화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통화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리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효율적인 일인가 하는 의문은 떨쳐버리기 힘듭니다. 1992년 검은 수요일을 겪고 유럽 단일 통화에서 탈퇴한 영국이 그 후로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파운드화가 강세를 기록해 "검은 수요일"을 "하얀 수요일"로 부르는 사람이 늘었는데 비해, 유로화의 핵심인 독일은 유로화 출범 이후로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과연 유로화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가 들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달러가 위험하니 유로화는 안전할 것이다"는 단순한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유로화라는 실험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찌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참고글
European Governments of the Eurozone are Separately Responsible for Their Euro-d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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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이탈리아는 유서 깊은 역사, 풍부한 문화 유산, 맛있는 음식,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로 유명한 나라죠. 유럽을 방문한 많은 관광객이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이탈리아를 최고의 관광지로 꼽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죠.

그런데 이러한 이탈리아의 매력적인 모습 뒤엔 구조적 부패, 뒤틀린 가족제도,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모순 등이 숨어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관광객은 볼 수 없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절실하게 느끼는 현실이지요.

얼마전 뉴욕 타임스는 풀죽은 이탈리아, 실망의 아리아를 부른다 (In a Funk, Italy Sings an Aria of Disappointment)라는 기사를 통해 이탈리아인들이 느끼는 삶의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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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에서 노령화로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이탈리아의 상징으로 선택한 사진)

이 기사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이탈리아를 최고의 관광지로 꼽지만,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서유럽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국민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문제점은 과거의 잘못이 해결이 안되고 그냥 그렇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지요. 정치적으로 이탈리아는 내각제인데, 내각제의 장점은 다양한 정파가 협상과 타협을 통해 원만하게 정부 운영을 한다는 점이지만, 이탈리아처럼 정치인의 부패가 심한 나라에서는 다양한 정파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만 연합하기 때문에 정치 개혁은 늘 말로만 끝나고, 똑같은 부정부패 정치인이 권력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덴마크인의 국회 신뢰도가 64%인데, 이탈리아인의 국회 신뢰도는 36% 밖에 안된다는군요 (한국은 얼마일찌 궁금하네요).

경제적으로는 이탈리아 특유의 전통 유지 정신 때문에 문화 유산은 많이 유지되는데, 인터넷 경제 같은 새로운 흐름은 제대로 발전을 못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제대로 발맞추지 못하다 보니 경제 발전도 늦어져서, 과거에는 영국을 추월했던 이탈리아 경제가 이제는 한때 서유럽의 후진국이라 불리던 스페인보다 뒤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이탈리아 사회는 2차대전 이후로 늘 같은 문제로 고민하지만 아무도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이제 사회 노령화가 심해지면서 (이탈리아의 출산율은 유럽 최저 수준입니다) 미래에는 상황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조차 잃어간다는 점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암울해도 희망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는데, 이탈리아는 희망을 잃은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저도 이탈리아에 몇 달간 머물러 보니까, 이탈리아 사회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체국에서 우표 한장을 사려고 해도 길게 줄을 서야 하고, 그나마 우표가 떨어진 우체국도 많았습니다. 길거리의 이정표는 가야할 방향의 반대 방향을 태연히 가리키는 경우가 허다했죠. 학비가 싼 대신, 학생의 특권을 누리고자 대학을 10년 이상 다니면서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는, 젊은이 답지 못한 젊은이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남부의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여행해보니 북부의 밀라노와는 전혀 다른, 무질서하고 가난한 모습이였죠.

이탈리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을 괴롭히도록 고안된 것 같은 행정체계였습니다. 밀라노에 사는 교포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외국인 등록을 하려면 집주인에게 거주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데, 집을 구해 거주 확인서를 받으려면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답니다. 이탈리아에는 이처럼 정상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합리한 행정이 너무나 많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꼼수를 부리며 살아야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한국도 이탈리아와 비슷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낮은 출산율, 뒤틀려진 가족제도, 구조적 부패 등). 현재 똑똑한 이탈리아 사람은 조국에 대한 희망을 잃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많이 간다고 합니다. 한국도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의 생계형 이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이민 가죠. 부디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이민을 떠나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이민을 오고 싶은 나라로 탈바꿈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세대 뿐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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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프랑스 언론은 사르코지가 탑 모델 출신 가수인 카를라 부르니와 함께 디즈니랜드에서 목격되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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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는 얼마전 세실리라와 이혼을 하였고, 그 후로 염문설은 몇 번 나왔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브루니는 이탈리아에서 출생했지만 프랑스에서  모델로 활동했고, 최근엔 가수로서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사르코지의 정적인 세골린 루와얄을 지지한다고 하는군요.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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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피가로는 온라인에서 "브루니가 대통령 부인으로 적합한가?"하는 설문까지 실시하던데, 사르코지가 10월 18일에 이혼했고, 사르코지와 브루니가 처음 만난 것이 11월 23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벌써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 빠른 듯 하네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가 두 사람의 결혼을 서두르리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우선, 그는 2006년 세실리아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갔을 때, 즉각 안 풀다라는 기자와 연애를 시작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이른바 Speedy Sarko라는 명성에 걸맞는 행동이었지요. 또한 사생활을 보장하는 프랑스의 법률 때문에 지금까지 사르코지의 염문설을 전혀 보도하지 못했던 프랑스 언론이 이번 데이트 현장에 대해 마음놓고 보도할 수 있는 것은, 사르코지 측에서 언론에 접촉해서 대통령의 디즈니랜드 방문일정을 알려줬기 때문이죠. 즉, 두 사람은 몰래 데이트를 즐기다가 우연히 언론에 포착된 것이 아니라, 기자들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모여주는 쇼를 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사르코지가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하는 흉내를 낸 것은 아닐 듯 합니다. 비록 만난지 한 달도 안된 사이지만, 사르코지는 이미 결혼에 대해 어느정도 마음을 정했기에 다른 연인과는 다르게 부르니만은 언론에 노출시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요. 특히 언론은 부르니가 세실리아와 매우 닮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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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별로 닮은 줄 모르겠지만, 키는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하네요 (세실리아 182cm, 카를라 부르니 180cm). 또한 세실리아도 모델이었고, 두 여인 다 부유한 예술가 가문 출신이란점도 같군요. 즉, 사르코지는 세실리아에게 "운명적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한 적이 있듯, 세실리아와 여러 모로 매우 비슷한 부르니에 대해서도 운명적 사랑을 느낀 듯 하네요.

하지만 사르코지가 기자를 초청해 데이트 현장을 공개한 까닭은 단지 부르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닌 듯 합니다. 5월에 대통령에 취임한 후, 프랑스를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인기를 누려온 사르코지는, 최근에 인플레이션의 심화로 지지율이 50%를 밑도는 위기를 겪는 중입니다. 따라서 사르코지는 이러한 위기를 타계하고자 제도 개혁, 대학 개혁 등을 포함하는 이른바 Sarkozy Acte II (사르코지 2막)를 준비중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추진하는데 "아내에게 버림받고 독수공방하는 이혼남" 이미지 보다는 "새롭게 사랑에 빠진 열정남"의 이미지가 더 어울렸겠죠. 사르코지는 이번 기회에 가정적인 이미지까지 보여주려 작정한 듯 카를라의 아이들과 어머니까지 대동하고 디즈니랜드에서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그가 새 애인과 그녀의 가족과 함께 즐겁게 만나는 사진을 본 프랑스 사람들은 "그래, 우리가 바라는 가정적이고 믿음직한 대통령의 모습이야" 했을지도 모르죠.

사람이 살다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데, 사르코지는 정확하게 연인이 필요할 때 사랑에 빠질 상대를 만났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고 해야할찌, 아니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야할찌 모르겠네요. 이탈리아 유력지 Corrier della Sera의 희망대로 "또 하나의  위대한 이탈리아-프랑스 커플"이 탄생할찌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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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시위와 파업이 많은 나라입니다. 파업이 하도 많기 때문에 무기한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시간표를 짜 놓고, "이날 오후부터 이날 오전까지" 하는 식으로 질서정연 (?)하게 파업을 합니다. 따라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파업에 맞춰 일정을 조절하며 살지요.

이처럼 파업에 익숙한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도, 이번 이탈리아 트럭 운전사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겠네요. 이들 트럭 운전사들은 기름값 인상에 항의하는 뜻에서 로마와 밀라노를 잇는 고속도로를 포함한 중요 도로를 막았고, 프랑스로 오가는 교통도 막아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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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ano Romano를 막아버린 트럭들. 그야 말로 도로가 주차장 되었음)

경찰도 나서보지만, 거대한 트럭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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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기를 듦으로 뭔가 일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센스)


시위 사흘째 접어들면서 모든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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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이 떨어진 주유소. 괴로운 운전자)

더 큰 문제는, 식료품 운반이 안되 슈퍼에 물건이 없다는 사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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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거리... 아니 슈퍼에서)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시위가 그러하듯, 이번 시위도 정해놓은 기간 동안 (이번 시위는 5일 예정)만 진행되는데, 이제 사흘이 지났고, 이틀이 남았습니다.

한국은 도심 시위로 한 시간만 교통 체증이 발생해도 신문과 방송에서 떠드는데, 이탈리아는 5일 동안 국가의 유통망을 마비하는 시위도 가능하군요. 나라마다 시위에 대한 관대함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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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에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미국인 친구와 서울 거리를 걸었는데, 그 친구는 간판들을 하나씩 읽더니 "노래방, 비디오방, 소주방, PC방... 왜 서울에는 방이 이렇게 많느냐?"고 묻더군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정말 한국에는 다양한 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노래방, 비디오방, PC방을 합한 멀티방까지 나왔더군요. 이 정도면 한국의 방 문화는 완성기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방 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한국적인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가라오케가 모든 손님 앞에서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곳이지, 우리 일행만 모여 노래를 부르는 곳은 아닙니다. 한국인은 식당에서도 일행만이 쓸 수 있는 방을 원하는데 비해, 외국의 레스토랑  손님 중엔 작은 인원을 위한 공간을 찾는 사람도 드물고, 그러한 공간을 마련해 놓은 곳도 적죠.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이렇게 "우리만의 공간"인 방을 원하는 것일까요?

한국인의 방 사랑을 이해하려면, 한국인의 집단의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집단은 대집단이 아닌 소집단입니다. 즉, 어떤 큰 집단 속에 있는 나만의 작은 집단이야말로 진정한 집단으로 보는 셈이지요. 예를 들어, 식당에 많은 손님이 모였어도, 다른 손님은 내 집단은 아니고, 내 집단은 나와 함께 식당에 온, 내가 잘 아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식당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특수한 공간에서 내가 속한 집단과 함께 식사할 때 더 기분이 좋은 것이지요.

나라마다 집단 의식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한국인과 비슷하게 소집단을 중요시하는 문화로는 이탈리아를 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19세기에 통일될 때까지 여러지역이 독특한 문화를 유지했고, 따라서 국가적인 통일성 보다는 지역적 통일성이 강합니다. 더 따지고 들어가 보면, 이탈리아인은 지역 보다도 가족 및 친족의 유대가 매우 끈끈하죠. 따라서 이탈리아인 중엔 가족을 위해 큰 희생을 할 각오가 되어 있는데 비해, 국가를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죠 (이차세계대전때 이탈리아 군이 적군을 만나기만 하면 총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말은 그러한 이탈리아인의 특징 때문에 생겨났다고 봅니다).

소집단의 개념은 학연, 지연 등의 네트워크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해 줍니다. 얼마전 뽀빠이 이상용씨가 이명박 후보 지지자 모임에 참석했을 때, 기자가 "왜 이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니까 "나랑 종씨인데다 학교 후배니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물론 언론에까지 혈연, 학연을 투표의 기준으로 당당하게 공개하는 사람이 적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알게 모르게 혈연, 학연, 지연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한국이라는 대집단 속의 소집단입니다.

한국인의 소집단 사랑은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지만, 극단으로 나아가면 국가적 공동체 의식이 사라질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지금 소집단 중에서도 가족을 제외한 다른 소집단 (친척, 이웃)의 영향력이 약화하는 중이지요. 따라서 가족은 점차 한국인에게 유일하게 의미 있는 집단이자 삶의 이유가 되어가는 듯 합니다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남의 아이를 혼냈다가 싸움이 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죠). 좀 고루한 이야기 같지만, 모두가 잘사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소집단 뿐 아니라 우리 전체가 속한 대집단 (한국, 더 나아가 세계)도 고려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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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