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영어 교육 대책을 내놓고 있는 인수위원회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영어 공교육 강화"라는 목표를 수정하지 않은 듯 합니다. 이미 2013년까지 영어전용교사 2만3천명 채용 계획을 밝혔고, 오늘은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실천 방안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인수위의 영어 몰입교육에 대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식민지를 만들려 하나"며 강하게 비판하였고, 블로고 스피어에는 인수위의 영어 교육 대책에 대한 비판이 넘치지만 (사진), 대통령 당선자 말고는 눈치볼 필요 없는 인수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영어 공교육 완성"을 향한 발걸음을 늦추지 않을 기세입니다. 비록 "영어를 잘하면 군대 안가도 된다," "모든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겠다"는 등의 세부사항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무산되었지만, 일반과목도 영어로 가르쳐 대단한 성적 향상을 거둔 희귀한 예까지 발굴해 보도하는 조선일보 같은 든든한 동지가 있는 이상, 몇몇 국민의 반대 쯤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후보 시절 "국어ㆍ국사도 영어로 가르치자"고 주장했던 만큼, 인수위의 정책은 곧 이명박 당선자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는 말은 곧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은 아예 수업을 한마디도 못알아 듣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고등학교에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면, 중학생들은 열심히 학원 다니면서 영어를 배워놓을 수 밖에 없지요. 따라서 영어 공교육 강화는 곧 영어 사교육 증가를 낳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는 "영어 사교육비 감소"를 목표로 한다고 합니다. 이는 얼마전 "통신비 절감"을 목표로 "쌍방향 요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발표를 할 때 만큼이나 어리둥절한 논리입니다. 불행한 사실은 앞으로도 이러한 기괴한 논리를 자주 보리라는 점입니다.
만약 인수위의 계획대로 영어가 교육의 언어로 자리잡으면, 영어 구사 능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특권을 누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돈이 많은 집안에서는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보내 영어 구사 능력을 심어주고 나면, 고등학교 수업을 너무도 쉽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가난한 집 자녀들은 해외연수는 꿈도 꾸지 못하고, 영어 학원도 겨우 다니다가 고등학교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니 자연히 경쟁에서 뒤쳐지겠지요. 따라서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면, 영어 구사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해라" 해도, "나는 선생님이 하는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단 말이에요!" 하고 반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결국 고등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대학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취직도 좋은 곳에 못하겠지요. 이들이 부모가 되면, 이들도 돈이 없어서 자녀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영어 공교육 강화는 사회를 계급화합니다. 과거에는 가난한 집 자녀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간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잘 살았는데, 이제는 돈이 없어 자녀를 해외연수 시키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수업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게 생겼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집안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올바를까요? 어차피 지금 교육도 남을 밟고 넘어가는 법을 가르치는, '비교육적인 교육'이라 문제가 많은데, 아예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영어 장벽"을 이용해 교육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이는 교육이 아니라 비교육일 것입니다.
한국인은 영어를 대단히 잘하지는 못하지만 6.25로 황폐한 나라를 지금처럼 번영한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일본인은 영어를 대단히 못하지만 2차대전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한국보다 더 번영한 나라로 바꾸었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잘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로 모든 수업을 한다면, 이 나라는 가난한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는 불의한 나라가 됩니다. 인수위는 한 번 정한 목표를 고수하려고만 하지 말고, 국민이 왜 그토록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에 반발하는지 이해를 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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