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윤리

사회 2009/07/23 06:18
사람들이 흔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비해서 말하지만, 체계의 규모로 봤을 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같은 급으로 놓기는 어렵습니다. 공산주의는 정치, 경제 이론을 중심으로 예술, 도덕 이론을 포함하고, 종교적인 성격까지 갖추었기에 근대에 들어 인간이 만들어낸 이념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는 단지 경제이론이 중심이고, 경제를 넘어선 부분에 대해선 별로 제공할 이론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는 예술가가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정교한 공산주의 예술이론을 개발했는데, 자본주의는 예술가, 특히 순수 예술가에게 이러한 지침을 제공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에 살던 예술가들은 공산주의의 표현으로 예술을 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예술가들은 자본주의와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 활동을 벌이기 마련이죠.

정치의 영역을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공산주의는 정치와 경제를 긴밀한 관계로 보고, 따라서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일관된 이념을 제시합니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노동자가 경제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당이 정치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그에 비해 자본주의는 정치의 영역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 자본주의를 정치에 적용한다면 자본가가 경제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본가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본주의를 따르는 국가는 대부분 정치권력을 일반 국민에게 돌리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는 "경제권력은 자본가가, 정치권력은 일반 국민이 갖는" 기묘한 구조라고 할 수 있죠.

자본주의가 이처럼 경제의 영역만 다루는 규모가 작은 이념이기에, 자본주의를 사회에 받아들이려면 자본주의 만으로는 안 되고 이를 보충하는 다른 이념이 필요합니다. 유럽은 기독교 전통과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보충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자면 노동자에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월급을 주면 됩니다. 즉,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이 많다면 노동의 공급이 많은 셈이니 노동의 가격이 내려가고, 따라서 매우 적은 월급만 주고 일을 시켜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농촌이 몰락하면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이 늘면서 노동시장은 포화 상태가 되었고, 자본가들은 이들에게 생계를 유지하는데도 부족한 월급만 주고 험한 일을 시켰습니다. 수입이 적어 생계가 어려워진 노동자들은 아이들을 노동 시장으로 내몰았고, 이로 말미암아 어른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알려지면서 때문에 "존엄한 인간을 이렇게 대해선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정치인에게 압력으로 작용해 노동환경 개선, 아동 노동 금지, 최저 임금제 등의 결실을 보았습니다. 만약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는 전통이 없었다면, 그리고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정치권력으로 바꾸어 놓을 정치 제도가 없었다면 지금도 유럽에선 기름 범벅이 된 꼬마 아이들이 공장에서 큰 기계 틈으로 다니며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는 윤리의 영역에 대해 제공할 이론이 없지만, 20세기 들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윤리학을 건설하는 야심 찬 작업을 추진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인 아인 랜드(Ayn Rand)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녀는 아틀라스(Atlas Shrugged) 등의 소설을 썼을 뿐 아니라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철학을 주창하기도 했습니다. 랜드는 자본주의- 알려지지 않은 이상(Capitalism: The Unknown Ideal)을 쓴 데서 알 수 있듯, 자본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우파였습니다. 그가 쓴 이기심이라는 덕목(Virtue of Selfishness)은 그가 생각하는 윤리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랜드는 각 사람은 행복해지려고 태어났고, 따라서 개인의 행복 추구는 최고선이기에,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놓는 태도야말로 미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남에 대한 배려나 불쌍한 사람에 대한 동정 등은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악덕이고, 배척해야 마땅하죠. 그런데 랜드가 옹호하는 태도는 바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왜 가난한 자를 돕느냐?"고 항변하는 부자들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즉, 부자에 대한 감세 정책은 미국에서건 한국에서건 랜드의 윤리관을 따르자면 대단히 도덕적인 정책입니다. 그에 비해 돈 많은 사람에게 세금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부는 랜드에 따르자면 대단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 있죠.

"이기심이 곧 덕목이다."는 아인 랜드의 주장이 단지 한 궤변가의 헛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인 랜드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그의 말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지금도 영어권 국가에서는 랜드가 쓴 Fountainhead나 Atlas Shrugged가 많이 팔립니다. 이러한 책들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랜드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랜드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죠. 또한, 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랜드가 이끌던 Objectivism 그룹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그는 랜드의 "자본주의- 알려지지 않은 이상"에 한 챕터를 쓰기도 했죠), 랜드의 사상이 그린스펀 등의 고위 관료를 통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다른 이념이나 종교에서 윤리관을 빌려와야 하는데, 다른 이념이나 종교가 대부분 쇠퇴한 오늘날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라는 자신 내부의 논리를 윤리로 발전시키려 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전통적인 개념의 윤리는 무너져 버리고, 사회는 오직 욕심이 가득 찬 인간들이 무한투쟁을 벌이는 전쟁터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막으려면 자본주의가 윤리의 영역에 침범하지 못하게 제한해야 합니다. 즉, 자본주의에 대한 견제가 필요한 것이죠.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고 이기심을 덕목으로 치켜세운다면 진정한 윤리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이 보약  (8) 2009/08/04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드립니다"  (5) 2009/07/25
자본주의와 윤리  (2) 2009/07/23
귀족 교육의 몰락, 그 이후...  (0) 2009/07/22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  (0) 2009/07/10
비정규직법, 무엇이 문제인가?  (8) 2009/07/03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 2009/05/28 05:58
마르크스가 기초를 놓은 공산주의와 다르게, 자본주의는 한 명의 이론가가 만든 이념이 아니고, 따라서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기 전까지는 하나의 이념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즉, 당시엔 누가 "나는 자본주의를 추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마르크스가 당시의 불공평한 경제체제에 대해 비판하면서,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경제구조를 "자본 중심의 경제"라는 의미에서 "자본주의"라고 규정해 버립니다. 이로 말미암아 자본주의는 이름이 없는, "현재 경제가 흘러가는 모습"에서 "추구하거나 배척할 수 있는 이념"으로 거듭나죠.

많은 사람은 자본주의의 핵심을 자유시장경제(free market economy)로 규정합니다. 시장은 자원(resources)을 분배하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즉, 온갖 재화, 서비스, 돈 등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이러한 재화, 서비스, 돈을 누가 얼마만큼 가질 것인지를 시장이 결정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 1년에 생산되는 쌀 중 얼마를 개인이 소비하고, 얼마를 쌀과자 제조회사가 소비하고, 얼마를 막걸리 제조업체가 소비해야 할까요? 시장경제에서 이러한 문제는 시장이 가격을 통해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각 가정의 쌀 소비량이 는다면 소매용 쌀 판매가 늘 것이고, 쌀과자가 인기라면 쌀과자 제조회사가 돈을 더 주고라도 더 많은 쌀을 소비할 것이고, 막걸리 판매가 는다면 막걸리 제조회사가 쌀을 많이 사들이겠죠. 만약 시장이 자원을 분배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공산주의는 시장을 부정하기 때문에 정부(엄밀히 말하면 정부의 통제를 받는 위원회)가 시장을 대신해 상품의 가격과 생산량을 정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각 상품의 특성과 소비자의 심리를 자세히 읽기가 어려워서 쓸모없는 제품을 많이 생산하거나, 인기가 높은 제품을 적게 생산하는 예가 많았죠.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전통적으로 정부가 특정 분야(과거의 중공업에서 최근의 건설업까지)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쓰는 국가입니다. 이처럼 정부가 지원하는 분야는 시장의 결정과 상관없이 자원이 모이겠죠. 이러한 모습은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90년대 미국 경제의 성장은 미국 정부가 IT 산업을 밀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첨병을 자처하는 한국의 보수 언론은 자유시장경제를 절대 신뢰하고, 정부의 간섭을 극도로 경계하지만, 작년 가을 경제위기가 닥치자 한결같이 정부에 "경기 활성화 정책을 내놓아라"고 닦달을 했습니다. 즉, 이들도 경우에 따라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죠. 따라서 공산주의자를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시장 경제를 인정하지만, 동시에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필요도 인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정도에 대해선 의견이 나뉘죠.

흥미로운 사실은, 요즘은 공산주의자들도 시장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데 열심입니다. 북한도 정부가 배급을 포기한 지 오래고, 북한 주민들은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는 시장에 의존해 생활하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세상에 시장경제를 완전히 거부하는 사람은 매우 흔치 않다고 봐도 됩니다.

이는 역사를 놓고 볼 때 매우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시장은 인류 역사상 늘 존재하였습니다. 한국만 봐도 조선시대든 고려시대든 시장이 없는 시대는 없었죠. 그리고 이러한 시장은 늘 자유로웠지, 누가 "당신은 쌀을 한 가마니를 팔아야 하고, 당신은 비단 한 포를 사야 한다"고 규제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느 곳이나 정부의 간섭과 세금 징수는 존재했지만, 이는 간과할 수준이었고, 상거래의 자유는 늘 시장의 중요한 특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시장을 부정하면서 시장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잠시 생겨났지만, "시장이 없는 경제"는 결국 실패로 끝났고, 지금은 공산주의가 탄생하기 이전처럼 모두가 시장을 인정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만 존재한다고 자본주의는 아닙니다. 시장은 자본주의의 형식이자 필요조건이지, 자본주의의 완성이 아닙니다. 자본주의를 자본주의로 만드는 것은 산업혁명과 함께 탄생한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내일은 이에 대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몽주의와 경제학 1- 이성의 몰락  (3) 2009/06/02
자본주의 정신의 탄생  (1) 2009/05/29
자본주의와 시장  (0) 2009/05/28
폰지 사기(Ponzi Scheme)  (5) 2009/05/20
경제활동은 도덕성을 띠는가?  (5) 2009/05/14
80/20 법칙  (9) 2009/04/24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사람들은 흔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권하의 한국은 자본주의가 발달하였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였죠. 지금 중국도 비민주적 정부가 자본주의 경제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과거 한국과 비슷합니다. 공산주의국가들은 자본주의를 거부하지만, 명목상으로나마 "민주주의"의 장점을 인정합니다. 유럽의 몇몇 국가는 분명히 민주주의가 발달하였지만, 미국식의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국가가 자원 분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릅니다.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이고,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이지요. 또한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체제인 데 비해 자본주의는 돈 많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체제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대립하는 관계입니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 미국은 국가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가, 자본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일부에서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들은 민주-공화당 (Democratic-Republican Party)을 중심으로 뭉쳤고, 이에 비해 "우리는 자유로운 경제체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나라이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자본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연방주의당 (Federalist Party)으로 뭉쳤죠. 민주-공화당에 따르면 대중이 국가를 주도해야 했고, 연방주의당에 따르면 경제의 주체가 국가를 주도해야 했습니다. 농민들이 민주-공화당을 지지하고, 은행가, 사업가들이 연방주의당을 지지한 것은 당연했죠. 한때 이 두 당의 대립은 미국을 분열의 위기로 몰고 갔고, 결국 제퍼슨 대통령은 갈등을 봉합하고자, 취임연설에서 "우리는 모두 공화주의자며, 또한 연방주의자다"(We are all republicans... we are all federalists) 라고 말했습니다.

부자들을 위한 당인 연방주의당은 한때 존 애덤스 대통령을 배출하는 등 기세가 등등했지만, 결국 대중적인 인기를 지속할 수 없기에 몰락하였고, 민주-공화당은 나중에 오늘날의 민주당으로 발전합니다 (오늘날의 공화당은 민주-공화당 과는 상관이 없이 나중에 생긴 당입니다). 이로써, 미국은 정치에서만은 자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주도권을 쥐게 되지만, 공화주의와 연방주의의 대립은 오늘날에도 정치체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상원은 단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의 모임이고 (물론 오바마 같은 예외도 있지만), 상원의원은 부유한 사람들의 권익을 대표하기 마련입니다. 그에 비해 하원의원은 출신성분과 상관없이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라면 될 수 있고, 따라서 실제로 지역구민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양원제는 공화주의와 연방주의가 타협한 결과 생겨났죠. 또한, 미국의 정당구도에서도, 민주당은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공화당은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합니다.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이 부자를 위한 감세를 추진하였고,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를 대상으로 한 증세를 추진하는 것은 당의 노선을 충실히 따른다고 할 수 있죠. 이렇게 본다면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헌법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국가가 맞는데, 현실에선 민주주의 논리보다 자본주의 논리가 더욱 강한 듯 싶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재벌에 대한 재판인데, 최근 몇 년간 재판을 받은 몇몇 재벌 회장 중 실제로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 사람은 없습니다 (한화의 김승연 회장은 재판의 결과 감옥에 간 것이 아니라,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을 뿐이죠). 즉, 한국에서는 돈이 많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감옥에 안 간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판결문에는 "피고는 돈이 많기에..."가 아닌 "피고는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기에 이를 참작해서..."라고 나오긴 하지만, 뭐, 그게 그 말이죠). 그에 비해 미국은 거대 기업을 운영하는 마르다 스튜어트가 주식 내부거래로 단 45,000달러의 손실을 피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고, 2001년 파산한 엔론의 최고 경영자들은 수십 년씩 실형을 선고받는 등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분명히 죗값을 치릅니다. 즉, 미국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한데, 한국법 앞에는 돈 많은 사람의 죗값은 가벼운 것이죠.

한국이 정말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치가 없다면 경제가 주도권을 잡기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사실 정치와 경제는 워낙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경제학을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y)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정치와 경제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다만, 정치가 국민편에 서지 않고 경제편에 서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결국, 이러한 상황을 바꾸려면 국민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주권을 행사하여 선거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잘 지키는 정당을 위해 투표해야 합니다. 서민이 감언이설에 속아 "부자를 위한 정책"을 쓰는 정당을 위해 투표해놓고, "왜 이렇게 살기가 어려워졌나" 해봤자 때늦은 후회일 뿐이죠. 앞으로도 선거는 많이 있습니다. 부디 이제라도 국민이 정신을 차리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시장의 실패

경제 2008/09/24 20:44


지난 주 여러 나라의 주식시장은 월스트리트에서 들리는 소식에 따라 폭등과 폭락이 이어지는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선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신청과 뱅크오브아메리카 (BoA)의 메릴린치 인수 소식이 전해지면서 폭락했던 주가는 미국 정부가 금융권의 부실자산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나선다는 소식과 미국, 영국 등의 공매도 금지 조치로 하락폭을 단숨에 만회할 정도로 급등했습니다.

공매도 (Shorting)는 자신이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파는 행위입니다. 즉, 주가가 떨어질 것을 예상해서 매도 주문을 내고,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주식을 사는 것이지요. 요즘 같이 주식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공매도로 돈을 벌려는 사람도 많을테고, 이러한 사람이 많을 수록 주가는 떨어지겠죠. 반대로, 정부가 공매도 금지 조치를 취하면 공매도를 하던 사람들은 빌렸던 주식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주식 매수에 나서게 되고, 따라서 주가는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주가 하락요인을 줄이기 위한 공매도 금지 조치는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것은 자체적인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유기체고, 따라서 외부의 간섭은 늘 시장을 왜곡하기 마련입니다. 공매도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주가 하락기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에, 자본을 시장에 묶어두는 기능을 합니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주가의 상승쪽에 돈을 걸면서 반대로 주가의 하락에 대비해서 일정비율을 공매도합니다. 그런데 공매도가 금지되면 주식에 투자한 헤지펀드는 주가하락이라는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도 헤지펀드가 주식시장에 투자할까요?

지금 드러난 문제의 핵심은 공매도가 아니라 시장의 실패입니다. 과거에 자급자족 경제가 지배하던 시대에 시장은 그저 경제의 작은 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농부에서 교수까지 모두가 시장에서 사고 파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시장은 모두의 생계가 달린 중요한 영역입니다. 하지만 시장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는 시장이 실패하도록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각국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모두 시장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조치이지요. 문제는 시장이 실패했다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은 왜곡되고 시장의 체력은 약해진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공매도를 금지하면 헤지펀드가 주식시장을 떠나 결국 주가는 더 떨어지는 것이지요.

만약 공매도를 금지하고도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정부가 주식거래금지 조치를 취한다고 상상해봅시다. 일단 주가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겠지만, 주식거래가 재개되자마자 주가는 더 큰 폭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왜곡은 왜곡을 낳고, 강력한 정부의 개입은 시장을 약화합니다. 그렇다면 시장을 살리려는 정부의 노력은 길게 봐서 시장을 죽이는 독약이라는 말이죠.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당장 죽어버리고, 모든 국민은 생계가 어려울 정도로 큰 경제적 타격을 입을찌도 모릅니다. 즉, 정부는 시장에 개입해서 장기적으로 시장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시장이 죽어가는 모습을 수수방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정부는 장기적으로 시장의 체력을 약화하는 시장개입을 선택할 것이고, 실제로 세계 대부분의 정부는 지금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시장이 실패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경제위기는 "시장이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만약에 시장이 그러한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시장을 대체할 다른 장치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몰락에서 보이듯, 정부의 계획경제가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시장이 없는 사회를 상상하기도 힘들죠. 이처럼 세계를 이끄는 시장이 실패하자 인류는 길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벌어지는 경제위기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책은 모두 미봉책에 불과하고, 인류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지 않는다면 최소한 몇 년간 세계 경제는 불안과 혼동의 시기를 겪어야 하리라고 보입니다.

참고글- "신자유주의의 몰락, 자본주의 이후를 고민할 때."
Short Selling Ban May Kick Off Market Liquidation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코 (KIKO) 사태가 남기는 교훈  (0) 2008/09/29
검은새, 날다  (0) 2008/09/26
시장의 실패  (0) 2008/09/24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  (0) 2008/09/21
배드뱅크, 경제위기를 끝낼 수 있을까?  (0) 2008/09/19
한국, 리먼 폭탄은 피했지만...  (1) 2008/09/15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얼마전 조선일보는 낡은 교과서가 프랑스, 독일 경제 발목 잡는다 는 기사를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한 프랑스, 독일의 교과서 내용에 대해 보도하였습니다. 이 기사는 프랑스와 독일의 교과서에 나오는 반자본주의 교육의 예를 자세히 언급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선일보는 이러한 경제 교과서가 경제 개혁의 장애물이라고 매도합니다.
일찍부터 고착된 반시장 편견은 개혁작업도 더디게 한다. 한때 ‘독일판 마거릿 대처’로 기대됐던 메르켈(Merkel) 독일 총리는 현재 개혁작업에서 뒷걸음치고 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Sarkozy) 대통령은 공무원 감축 등 개혁의 나팔을 불고 있지만 정책의 상당수는 보호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결국 양국의 경제 개혁이 제대로 궤도에 올라서려면 지금 교실에서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면, 왜 프랑스와 독일은 이렇게 반자본주의적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일까요? 이는 이 나라들은 자본주의 역사가 길고, 따라서 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 이후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서유럽은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졌고, 부자들은 돈이 넘처나는데,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하루종일 위험한 일을 하여도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결국 마르크스가 "혁명으로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이루자"고 외쳤을 때, 많은 유럽인들은 그의 주장에 찬성하여 공산주의가 퍼졌고, 이러한 혁명 운동을 억누르기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파시즘이 나왔죠. 결국 자본주의의 모순이 공산주의와 파시즘이라는 쌍둥이 괴물을 낳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은 유럽 사람들은 2차대전이 끝난 후,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장치를 사회제도에 도입합니다.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지요. 이제 서유럽의 많은 국가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안해도 되고,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의료비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미국은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사회 분열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자본주의에 대해 대단한 신뢰를 합니다. 따라서 어떠한 문제도 "자유경쟁시장"에 맡기면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고, 자본주의의 위험에 대해 경계하지 않죠.

하지만 미국이 자본주의를 절대진리로 믿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맏기는 경제 방식을 따른다 하더라도, 미국이 꼭 유럽보다 경제가 잘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작년 미국, 프랑스, 독일의 경제 상황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실질 GDP 성장 2.9% (2006 est.)
1인당 GDP $43,800 (2006 est.)

프랑스
실질 GDP 성장 2.2% (2006 est.)
1인당 GDP $31,200 (2006 est.)

독일
실질 GDP 성장 2.8% (2006 est.)
1인당 GDP $31,900 (2006 est.)    (출처- CIA World Factbook)

1인당 소득은 미국이 앞서지만, 경제성장률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개인까지 소비주의에 빠져 돈이 있건 없건 쓰고 보자는 분위기가 강하고, 이러한 분위기가 결국 최근의 서브프라임 위기, 신용경색 위기를 낳았습니다. 현재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돈이 없어 중국, 아랍계 펀드에 점차 팔려 가는 중이고, 개인은 신용카드 빚과 모기지에 시달리고, 정부는 국채에 시달리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가 미덕이기 때문에 아무도 소비를 줄이려는 건전한 노력은 하지 않죠. 결국 미국은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 때문에 경제가 위기에 쳐한 것입니다.

한국도 미국 처럼 자본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즉, 미친듯 돈 벌어 부자가 되기만 하면 행복해지리라고 생각이 강하죠.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것도 이러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하지만 견제 없는 자본주의의 발달은 경쟁심의 발달을 초래하고, 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삶은 사라져 버립니다. 이미 한국 사회가 황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불경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마음을 옥죄기 때문 아닐까요? 한국이 살 길은 자본주의의 고삐를 푸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조상들 처럼 보릿고개를 걱정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은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영혼을 돈 욕심으로 물들여 파괴하는 괴물이기도 하지요.

자본주의가 이처럼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대하는 태도도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자본주의의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사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본주의를 비판할 시간에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목표인 돈 버는 일에 더 시간을 쓰기 원합니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성공의 방법인 경쟁을 통한 승리를 철두철미하게 따릅니다. 즉, 옆사람을 밟고 넘어가야 내가 잘 살게 된다고 믿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지요. 이들에게 가난한 사람은 자본주의사회의 패배자이기 때문에 별로 동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에 비해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비록 돈을 버는 과정에서 조금 실수 (또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목표에 성공적으로 도달하였기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세상은 다 그런거야. 너만 깨끗한 척 하지마. 너도 돈 벌기 원하는 마음은 똑같잖아. 어차피 부자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면, 딴 생각 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돈벌려고 열심히 노력해봐."

다음으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수정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입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인간성 파괴나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들이 보기에 지나친 경쟁은 사회를 황폐한 곳으로 만들기 때문에 약자에 대한 배려를 더함으로 경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들은 돈을 버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정의와 사랑의 실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성장이 조금 늦어진다 하더라도 이는 가치있는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사람이 돈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잖아. 돈에 미쳐 사는 삶이 정말 우리가 추구하고 싶은 삶일까? 자본주의가 잘 되려면 가난한 자에 대한 돌봄을 강화해야돼. 경쟁에서 승리할 생각만 하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고."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정신을 거부하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이들은 자본주의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할 뿐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고, 아예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제거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업가들을 "악한 체제에 순응해 남의 돈을 빼앗은 나쁜 사람"으로 보고, 그에 비해 가난한 사람은 "악한 체제의 피해자"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들은 부자가 빼앗아 간 돈을 부자로 부터 되찾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자본주의는 몇몇 부자만을 위한 체제이고, 우리 모두는 이 체제의 피해자일 뿐이야. 왜 부자들에게 복종하고 살아가려고 해? 우리가 힘을 합하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니까."

결국 이러한 세 가지 태도가 이번 대선의 핵심이지요. 이명박, 이회창 후보는 첫번째 태도에 가깝습니다. 정동영 후보와 문국현 후보는 두번째 태도에 가깝습니다. 권영길 후보와 금민 후보는 세번째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합하면 50%가 훨씬 넘습니다. 즉, 우리 국민은 지금 자본주의 체제를 개선하거나 거부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에 순응하려는 마음이 큰 것이지요. 물론 요즘 먹고 살기 힘들다니까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심정은 이해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태도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지 가난한 사람을 돌보거나,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는 경쟁심을 줄이려는 노력 등은 다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듯 합니다.

만약 국민들이 이러한 마음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고,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은 이전 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황금만능주의"는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덕목이 되겠지요. 이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일이 막막하게 느껴지네요.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과반수 국민의 선택인 것을...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