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로 경제성장을 지속하였지만, 미국 가정의 평균 소득은 70년대 이후로 거의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즉, 국가 경제는 발전하는데, 평범한 국민은 그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한 것이지요. 따라서 과거에는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늘 부유하였지만, 지금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들 보다 더 잘살리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반인의 실질소득 감소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30-40대인 분들은 부모님으로부터 먹을 것이 없어서 산과 들로 먹을 것을 찾아 다니던 이야기, 신발이 없어서 학교까지 걸어간 이야기 등을 들으셨을 것이고, "너희는 고생이 모르고 자라니 고마운 줄 알아라"는 말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모 세대와 다르게 부유하게 자란 성인들은 막상 자신의 자녀들이 앞으로 자신들 보다 훨씬 잘살리라는 확신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경쟁에서 뒤쳐지면 오히려 자녀가 부모보다 가난해지기가 쉽겠죠.

이러한 소득 감소 현상은 중산층의 붕괴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과거엔 사회를 받치는 든든한 허리 같던 중산층이 지금은 종잇장 처럼 얇아졌죠.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중산층이 붕괴한 원인을 이해하려면, 중산층은 늘 정부가 인위적으로 창조해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칼 막스는 세상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지배하는 구조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중산층이 존재할 여지가 없겠죠. 하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은 공산주의 국가와 경쟁하기 위해 중산층이 생겨나도록 정책을 썼습니다. 만약 중산층이 없다면 노동자는 소망이 없는 삶을 살다가 나중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막스가 말한대로 혁명에 나설 위험이 컸기 때문이죠. 이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덕분에 미국, 유럽, 한국 등에 중산층이 생겨났고, 노동자들은 혁명에 나서는 대신 중산층 편입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공산주의는 호응을 얻지 못하고 결국 내부로부터 붕괴해버렸습니다.

중산층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정부의 노조 보호였습니다. 노조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직입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을 상대로 대결을 벌이다 보면 늘 중간에 폭력이 들어가고, 불법을 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노조의 활동을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목으로 처벌한다면 노조는 결코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내지 못합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냈다는 사실은 그만큼 정부가 노조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줬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1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복귀 명령에 응하지 않는 항공 관제사 1만 1천명을 파면한 일이나, 1984년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 탄광 노조의 파업에 대해 정면 대결을 통해 노조를 무력화한 일은 중요한 의미를 띕니다. 이는 이제 정부가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고, 그 결과 지금까지 영국과 미국에서 노조는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힘을 쓰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죠. 그에 비해 노조의 불법 활동에 대해 정부가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지금까지도 노조의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노조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는 노동자의 월급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정상적인 직장을 갖기만 해도 쉽게 중산층에 편입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월급을 많이 주면 생산비가 올라가고, 주주에게 돌아갈 배당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주의 입김이 세지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 이러한 상황은 달라질 수 밖에 없지요.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대단히 강조합니다. 이는 쉽게 말해 사용자가 직원을 쉽게 해고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이에 비해 유럽 본토의 국가들은 대부분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지금까지 거부하기 때문에 직원 한 명이라도 해고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보통 노동법의 차이에서 생깁니다. 즉, 노동법이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보장한다면 노동자에게 유리하고, 사용자의 해고할 권리를 보장한다면 사용자에게 유리하겠죠. 이렇게 본다면 1996년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신자유주의가 한국의 법제도를 바꾸어 놓은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노사 관계가 변한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세계화 (globalization)입니다. 과거엔 회사가 노동자와 아무리 싸운다 할찌라도 결국은 서로 타협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노조가 문제를 일으키면 "노조 문제가 없는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기겠다"고 위협할 수 있고, 이는 많은 경우 대단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신문들도 "노조 문제 때문에 공장들이 한국을 떠난다"는 식으로 협박성 기사를 싣고, 이는 국민들에게 "노조는 한국 경제를 망치는 나쁜 놈들"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죠. 이러니 노조가 힘을 쓸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중산층의 몰락은 이처럼 노사관계의 변화로 인한 고용불안과 함께, 지출의 증가가 큰 원인을 차지합니다. 세계화로 인해 컴퓨터로부터 옷까지 대부분의 공산품 가격이 내렸지만, 반대로 집값, 대학등록금 등 목돈 들어가는 중요한 비용의 지출은 더욱 늘어났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에서 중산층의 탄생은 1944년 통과한 G.I. Bill의 영향이 컸습니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이 법안에 따르면,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대학교육이나 직업교육을 무료로 받았고, 싼 이자로 주택구입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많은 젊은이가 대학에 갔고, 가정을 이뤄 집을 구입하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쉽게 대학 교육을 마치고 집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쉽게 돈을 모았고, 중산층은 급작스럽게 늘어났죠. 하지만 지금은 대학 등록금과 집값이 대폭 오르기 때문에 돈을 아무리 벌어도 집 사고 자녀 대학 교육 시키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서 노년 빈곤에 시달리게 됩니다. 게다가 언젠가 의료보험체제까지 바뀌고 나면, 의료비 부담도 늘어나 웬만한 사람은 중산층에 편입할 꿈도 꾸기 힘들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중산층의 회복은 신자유주의의 극복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정부는 노동자의 일할 권리를 보장해주고, 서민의 학자금과 주택구입 자금에 대해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경쟁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논리가 지배한다면 이 나라는 경쟁에서 승리한 부유층과, 경쟁에서 패배한 빈곤층이 서로를 증오하는 불행한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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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주춤하고 국회가 개원하면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작심한 듯 주춤했던 정책들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우선 과반수를 훨씬 넘는 한나라당의 국회 운영을 쉽게 하기 위해 단상점거, 몸싸움 금지법을 추진 중이고, 노무현 정부가 남기고 간 기록을 현 정부에서 볼 수 있도록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내놓은 대표적인 대책인 종부세도 대폭 완화해서 비싼 집 가진 사람들의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이 추진중인 입법내용에 대해선 한겨레 기사 ‘우향우 입법’ 홍수…‘거여’ 밀어붙이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종부세 완화나 대선 공약인 기업세 감면에서 드러나듯,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실용정책은 쉽게 말해 부유층에 유리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설명할 때는 "부자를 잘살게 함으로 가난한 사람도 경제적 이익을 받도록 한다"고 말하는데, 문제는 많은 국민이 이러한 설명을 믿는다는 점이지요.

이러한 정책은 미국 공화당의 Pro-business 정책과 상통합니다. 80년대 이후로 레이건,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세 명의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부자에 대한 세금 감면과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축소를 추진했는데, 이들도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정책은 부자에게 유익할 뿐 아니라 부자의 돈이 아래로 흘러 내려가서 (trickle down) 결국 가난한 사람도 잘살게 된다"는 설명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을 추진한 결과 미국의 빈곤층 문제는 갈수록 악화하였고, 미국 가정의 실질 소득은 70년대 이후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메기는 대신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 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유럽은 (프랑스를 예로 들자면 가난한 사람에겐 집세의 일부분을 정부가 대신 내주기 때문에 매우 가난한 사람도 어느 정도 괜찮은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빈곤층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부자가 돈을 벌면 돈을 많이 쓰고, 결국 그 돈이 가난한 사람에게까지 흘러간다는 것은 우파 정책가의 머리속에만 존재하는 환상입니다. 부자는 돈을 써도 좋은 백화점, 좋은 식당 등에서 쓰기 때문에 부자가 쓴 돈은 결국 부자에게 다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제가 인도에 갔을 때 본 것은 릭샤 운전사는 한달에 30만원 벌기도 힘든데,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수백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서구인처럼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따지면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젊은이가 번 돈이 릭샤 운전사에게까지 흘러들어가야 하는데, 릭샤 운전사는 릭샤 요금이 워낙 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월급을 얼마나 많이 받듯 소득이 늘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는 한국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기업세를 감면해서 삼성의 수익이 늘어난다고, 동네 김밥집의 매출이 늘어들까요?

가난한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직접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을 펴야 합니다. 미국이 중산층의 국가가 된 것은 군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대주고, 최저 임금을 보장해주고, 가난한 사람이 집을 살 돈을 대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책은 2차대전 전후로 완성이 되었는데, 그에 비해 최근의 미국은 최저임금이 오르지가 않는 등 노동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중이고, 부자의 세금을 감면하려는 노력은 많지만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국가의 도움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과거엔 직장을 구하기만 한다면 중산층으로 사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직장이 아니라면 부부가 함께 밤낮으로 일해야 겨우 빠듯하게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 특정한 직업에 종사하거나, 사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고 일하지 않는 이상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는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엔 국민의 시선을 의식해서 통신비용을 낮추겠다,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등 소란을 떨다가, 지금은 그냥 재벌과 부유층만 바라보고 정책을 펴겠다는 생각으로 바뀐 듯 보입니다. 재벌과 부유층을 위한 정책은 그야말로 재벌과 부유층에게만 이익을 줄 뿐입니다. 서민이 잘사는 길은 정부가 직접 서민을 돕는 정책을 펼치는 길 뿐입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는 서민의 지지를 많이 얻고 출범했지만, 실제로는 서민을 도울 마음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존재하는 한 서민경제가 좋아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부디 다음 선거에선 "부자를 잘살게 함으로 모두 잘살게 해주겠다"는 후보가 당선되는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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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로 접어들면서 대통령 선거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각 후보 진영은 10여 일 남은 선거운동기간 동안 최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동의 1위는 여전히 이명박 후보입니다. 많은 사람은 이번 주에 검찰이 BBK 사건에 대해 판세를 바꿀 만한 발표를 하지 않는 이상,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리라고 예측합니다. 즉, 이명박 후보는 지금 가장 결승점에 가까이 다가온 후보인 것이지요.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무엇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호소력 큰 메시지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가 살아나리라고 생각하고, 이 후보 자신도 입만 열면 "경제를 살리겠다"고 장담함으로 경제 대통령 이미지 굳히기에 힘쓰는 중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은, 경제는 이미 살아났고, 따라서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살아있는 경제를 다시 살릴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경제가 살아났다니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경제의 주요 지표, 즉 경제성장률 (GNI 기준 지난 5년간 매해 10% 이상 성장)이나 무역수지 (지난 4년간 매해 100억 달러 이상 무역흑자), 환율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 중), 주가 (올해 사상 최초로 2000포인트 돌파)등을 살펴보면 지금 한국 경제는 "살려야 한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너무 건강한 상황입니다.

그러면 "경제가 잘된다는데, 왜 살기는 더욱 어려워졌나?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한가? "하고 물으시겠지요. 이를 이해하려면 최근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중산층의 몰락과 소득격차의 심화입니다. 한국도 90년대까지는 중산층이 사회를 탄탄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지금은 부자는 있어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은 많지 않습니다. 과거의 중산층이 지금은 저축해 놓은 돈도 얼마 안 되고,  수입도 언제 끊길지 몰라 불안한 준 빈민으로 전락했기 때문이죠.

중산층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시절 자본주의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공산주의는 "다수의 노동자가 소수의 자본가의 지배를 뒤엎는 혁명을 일으키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들리기 마련이고,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닜습니다.  하지만 중산층이 많은 나라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중산층은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 혁명 같은 위험한 변화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또한, 중산층이 많은 사회에서는 빈민도 "이 사회에 잘 순응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난한 사람이라도 공산주의처럼 위험한 이념을 따르기보다는 열심히 일하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죠. 따라서 중산층은 공산주의 혁명을 막는 중요한 방어막이었습니다.

그런데 90년대 초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이러한 상황이 변했습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나니, 공산주의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중산층이 필요 없어졌고, 따라서 중산층은 존재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그러자 부유층은 중산층의 재산을 빼앗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를 위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바꿉니다. 이로 말미암아 중산층의 경제를 책임지던 가장들은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대신 40-50대면 직업을 잃었고, 그의 가정은 준 빈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또한, 중산층 젊은이들은 직업을 얻기도 어렵고, 얻어봤자 비정규직이라 수입도 적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사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이렇게 노동시장이 고용주에 유리하도록 바뀌자 임금의 형태로 중산층에 들어가던 돈이 줄어들었고, 그만큼 기업의 이익은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기업은 결국 주주의 소유물이고, 주주는 대부분 부유층입니다. 따라서 중산층이 임금을 통해 벌어야 할 돈이 부유층에게 흘러간 셈이지요.

집값상승은 중산층 몰락의 또 다른 이유입니다.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소득만으로도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이 없는 사람은 집세를 내느라 돈을 모으기 어렵고, 영원히 빈민층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죠. 과거에는 노동자도 열심히 일하면 자기 집을 샀고, 이를 통해 중산층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값이 크게 올라간 상황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기 집이 없이 때문에 빈곤이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죠. 지금처럼 집값이 높다면 집세도 올라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집이 있는 사람은 쉽게 돈을 벌고, 집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일해도 집세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인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은 국가경제의 어려움이 아니라 중산층의 부가 부유층으로 옮겨가면서 생겨난 어려움입니다. 이제 집과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쉽게 돈을 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빈민, 또는 준 빈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물론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게 되면 중산층이 될 수 있지만, 이러한 전문직을 갖으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려면 사교육에 엄청나게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러한 비용은 부유층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전문직은 부유층의 자녀가 독차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즉, 부의 세습이 시작된 것이지요.

따라서 이명박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현재 국민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오히려, 이명박 후보는 부자를 더 부자 되게 함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즉, 빈부의 격차를 키우겠다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 대부분은 과거보다 훨씬 큰 경제적 어려움을 매일 느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부유층의 대통령이 되겠죠. 대부분의 국민은 지금보다 더 큰 경제적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그를 찍겠다는 사람들은 그의 경제 정책이 자신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투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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