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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6 지도자의 자질 (5)
  2. 2009/08/11 지도자의 권한 (2)

지도자의 자질

사회 2009/11/16 06:00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팔레스타인 군대를 대표하는 골리앗은 이스라엘군에게 "한 명이 나와 싸움을 벌여 내가 이기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고, 그가 이기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되기로 하자!"고 제안합니다. 골리앗은 키가 큰데다가 청동 갑옷으로 무장하였기에 이스라엘군 중에선 아무도 그와 맞대결을 펼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중 다윗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우리는 군사지도자끼리 싸움을 벌여 전쟁의 승부를 가리자는 제안이 얼마나 황당한지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약 2차대전 때 처칠이 히틀러에게 "레슬링 매치로 전쟁의 승패를 가리자"라고 했다거나,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사담 후세인이 조지 W. 부시에게 "팔씨름으로 승부를 결정하자"라고 제안한다면 우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고대 전쟁사를 보면 장수끼리 승부를 겨루는 장면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는 그리스군의 장수 아킬레스와 트로이군의 장수 헥토의 싸움이 나옵니다. 삼국지에는 여포가 적장들과 차례로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지도자 간의 무력 대결"이라는 개념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거의 사라졌지만, 20세기 중반까지 주먹들의 세계에선 조직의 우두머리끼리 겨뤄 승부를 가리는 풍습이 존재했죠. 문명이 파괴된 미래의 모습을 다룬 포스트맨이라는 영화를 보면, 군사조직의 지도자와 대결을 펼쳐 그를 꺾는 사람은 그 조직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한다는 규칙이 나옵니다. 이는 영화 속의 사회가 과거의 상태로 돌아갔음을 보여주는 장치죠.

옛날 사람들이 조직 지도자 간의 힘 대결을 정당한 승부로 간주한 것은 당시 인류가 지도자의 육체적인 힘을 대단히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농경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는 몸을 통한 에너지의 효율적인 변환이었습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음으로 열량을 섭취하고, 이를 힘으로 바꿔 농사를 지음으로 다시 열량을 생산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농사 기술로는 먹는 열량 만큼 식량을 생산하기가 어려웠고, 많은 사람은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힘이 센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생존에 유리했고, 따라서 사람들은 힘이 센 사람을 대단히 우월한 존재로 존경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고대 사회엔 힘이 센 사람에 대한 전설이 많고(이스라엘의 삼손,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중국의 항우 등), 이처럼 힘이 센 사람은 곧 영웅으로 칭송되고, 심지어 국가의 지도자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힘은 중요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음식을 먹어 에너지로 바꾸기보다는 석탄이나 석유를 에너지의 원료로 해서 기계를 움직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과거엔 큰 돌덩이를 옮기려면 많은 힘이 들었지만, 기계를 쓰면 힘이 약한 사람도 쉽게 옮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산업 사회가 되면 힘이 센 사람을 존경하는 풍습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 대신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자원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존경받게 되죠. 자원 관리는 다양한 자원을 조합해 결과물을 생산해야 하는 산업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들어 팔려면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판매하는 파트를 각각 관리해야 합니다. 이 중 생산 파트를 살펴보면 재료를 수급하고, 품질을 유지하고, 인력을 관리(사원 복지 문제도 포함)하며, 다른 파트와 의견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활동이 조화롭게 진행되려면 각 부분의 필요를 이해함과 동시에 전체적인 흐름을 잘 파악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산업사회엔 이처럼 자원을 잘 관리해서 결과물을 내놓는 매니저가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습니다.

산업사회 지도자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들은 바로 군사 지도자입니다. 군사지도자들은 다양한 자원(음식, 의복, 무기, 병사 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어야 합니다. 군사 지도자가 군대를 잘 관리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저러한 관리자가 나라를 관리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기가 쉽겠죠. 그래서 미국인들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 장군을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또한, 군인 자신도 "내가 군대를 운영하듯 국가를 운영하면 잘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군사지도자가 정권을 탈취한 것은 이러한 논리 때문입니다.

하지만, 효율을 강조하는 산업사회는 비인간화라는 문제를 낳고, 사람들은 단지 자원을 잘 관리하는 지도자가 아닌, 삶에 방향을 제공할 지도자를 찾게 됩니다. 21세기 사회는 물질적 풍요보다 의미의 부재가 더 큰 문제로 부각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올바른 삶의 모범을 보여줄 지도자를 찾고, 그러한 지도자를 따름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기 원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지도자가 되려면 능력 뿐 아니라 삶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불거진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산업사회에서 자란 세대와 그 이후 세대가 지도자를 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줍니다.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관리자형 지도자"의 덕목 중 도덕성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약 공장장이 공장의 생산성을 올리기만 한다면, 그가 공장 밖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 젊은 세대는 지도자를 곧 내 이상의 표현으로 보고, 따라서 양심적이지 않은 지도자를 뽑는다면 이는 곧 내가 타락한 인간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세대는 "도덕성과 상관 없이 유능한 사람을 뽑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혐오하기 마련이죠. 그에 비해 산업사회에서 자라난 사람은 유능한 후보를 도덕성 문제로 거부하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판단하겠죠.

21세기형 지도자의 또 다른 중요한 자질은 의사소통 능력입니다. 과거에 사람들은 지도자에게 카리스마, 강한 의지력, 조직관리 능력 등을 요구했지만, 오늘날엔 지도자의 의사소통 능력이 어떤 능력보다 중요한 지도자의 자질로 인정됩니다. 미국에서 무명의 정치인이었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중요한 원인은 그가 Dreams from my Father와 Audacity of Hope라는 책을 쓰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효과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행한 연설 때문이었죠. 그의 연설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 넣었고, 이로 인해 그는 일약 전국에서 유명한 정치인이 됩니다. 결국 그의 의사소통 능력은 그가 대통령이 되도록 길을 만든 셈이죠.

시대가 바뀌면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격이 바뀌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도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이 나뉘는 원인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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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지도자의 권한

문화 2009/08/11 05:44
제가 1999년에 LA를 방문했을 때 친척들로부터 들은 일입니다. 당시 부통령인 알 고어가 사촌 동생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왔는데, 학생들을 모아 놓고 연설하고 싶었지만, 교장이 허락을 안 해줘서 교사들만 만나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부통령이면 대통령 다음 가는 국가의 권위자인데, 일개 교장이 허락을 안 한다고 학생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당시로는 제게 매우 충격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유럽에 살다 보니 당시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권위는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올라 어떤 권위를 행사한다는 말은, 특정한 일을 해내기 위한 수단을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직무이고, 모든 직위에는 직무를 규정하는 job description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Job description은 대통령이나 사장 같은 최고 책임자뿐 아니라 전산 담당자, 비서, 청소부 등 조직 내의 모든 사람에게 존재합니다. 즉, 조직에 속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job description에 나온 대로 일을 해낼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도자라도 구체적인 job description을 따라 일하는 사람의 고유 영역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서양식 리더십입니다. 그러니 부통령이라도 "학생들에게 최고의 학습환경을 조성해준다."는 job description에 따라 일하는 교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수 없죠.

그에 비해 한국식 권위자는 권위와 권위자가 구분되지 않습니다(이는 서양에서는 지식을 객관화하는 데 비해, 동양에서는 지식이 곧 지식을 소유한 사람과 동일시되는 현상과 비슷하죠). 따라서 한국에서 어떤 사람이 책임자가 된다는 말은 "아랫사람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부릴 권리를 갖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권위자는 job description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자기가 알아서 적절하게 조직을 이끌어 가면 됩니다. 또한, 권위자가 곧 권위이기에, 권위자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아랫사람에게 사적인 업무를 시켜도 대부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교수들이 대학원생들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군대에서 장교가 사병에게 개인적인 업무를 시키는 경우가 그러한 예죠. 이처럼 아랫사람에게 직업 업무와 관계없는 일을 시키는 경우는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양인의 머릿속에서 지도자는 업무의 영역에 대해서만 권위가 있지, 업무 외의 영역에 대해선 일을 시킬 권위가 없기 때문이죠.

한국의 지도자는 서양의 지도자와 다르게 아랫사람에게 영역의 제한을 받지 않고 권위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랫사람 고유의 영역을 잘 존중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조직 내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문서가 아닌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도자가 "그 영역에 대해서도 내가 최고 권위자다."라고 주장한다면, 밑의 사람들은 그냥 따라야 하죠. 그에 비해 서양은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아랫사람의 영역을 침범했다면 객관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죠.

얼마 전 하버드대학의 헨리 루이스 게이츠 교수가 자기 집에 들어가다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은 경찰이 또 인종차별을 저질렀다고 분개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경찰이 어리석게 행동했다."(acted stupidly)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이 엄청나게 반발했고,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좀 다른 말을 썼어야 했다."(I could've calibrated those words differently)며 거의 사과에 가까운 말을 했습니다. 물론 이를 백인 유권자를 겨냥한 제스쳐로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을 어떻게 체포할지는 경찰이 결정할 문제이고,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이를 직접 비난한 것은 월권행위입니다. 따라서 인종 문제를 떠나서,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해야 맞는 일이죠. 조직의 관점에서 봐도, 대통령은 연방정부의 수반이고 지역 경찰(local police)은 연방정부 소속이 아닙니다. "국가의 어른"이라고 아무 영역에 대해서나 코멘트를 하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에선 대통령이라도 연방정부 바깥의 조직에 대해 간섭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죠.

서양식 권위자와 일해보면 편하긴 한데, 정을 느끼긴 어렵습니다. 철저하게 정해진 업무의 영역 내에서만 만나고, 그 이상의 관계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고, 아랫사람의 영역을 인정해 준다는 점은 장점이기도 합니다. 동양의 권위 개념은 유교에 바탕을 두었는데, 유교라는 이념이 무너지면서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유교가 무너진 이후에 자란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권위의 개념에 대해 많이 답답해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세대 간에 서로 이해하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권위자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겠죠.

P.S. 저는 오늘부터 3주 휴가이긴 한데, 지난달에 너무 자주 글을 쉬어서 휴가 기간 전체 동안 블로깅을 쉬기는 뭣하고, 8월 마지막주만 한 주 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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