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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7 조용한 죽음 (3)
  2. 2007/12/19 집단 우울증에 빠진 이탈리아 사회 (11)

조용한 죽음

사회 2009/09/17 05:06
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자본주의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 단계로 보았고,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공산주의가 국가의 지배이념이 된 최초의 나라는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영국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뒤진 러시아였죠.

러시아가 방대한 영토에도 서유럽의 여러 나라와 다르게 가난한 원인은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서양문명의 본산인 그리스로부터 멀었기에 문명이 늦게 전해졌고, 따라서 야만상태를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신약성경엔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스구디아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바로 지금의 러시아 지역에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미 1세기부터 러시아 지역은 야만인이 사는 지역의 상징이었다는 뜻이죠.) 그리스의 문명이 유럽 남쪽으로 전해지면서 오늘날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엔 문화가 꽃피고, 이는 다시 로마 제국에 편입된 영국, 독일 서부지역으로 퍼져 나갔죠.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독일 동부 지역과 스칸디나비아 지역도 유럽문명에 편입되었지만, 러시아는 서유럽으로부터 너무 멀었기에 서유럽 국가들처럼 로마제국의 문화적 유산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러시아는 서유럽 국가들이 경험한 로마 제국의 지배, 중세 가톨릭 교회의 지배, 르네상스, 종교개혁, 계몽주의 운동, 18세기의 정치적 혁명, 19세기의 산업혁명 등을 경험하지 못하고, 몽골의 지배, 로마가 아닌 그리스의 종교(정교회), 육로를 통한 국토확장 등 독특한 경험을 통해 민족성이 형성됩니다.

러시아의 역사를 결정한 또 다른 요인은 혹독한 추위입니다. 날씨가 추우니 추위와 싸우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고, 삶의 여유를 즐기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파르타의 척박한 자연환경이 스파르타의 잔혹한 정치체제를 낳았듯, 러시아의 척박한 환경도 러시아의 지배계층이 대중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체제를 낳았습니다. 이처럼 자연환경과 지배계층 양쪽으로부터 고난을 당하던 러시아 민중은 결국 공산주의라는 검증되지 않은 이념을 해결책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러시아는 차르의 통치 시절보다 더 혹독한 독재를 경험합니다.

1990년대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난 러시아는 자유세계에 편입되어 정상적인 국가로 탈바꿈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러시아가 겪은 인고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후진적인 정치, 구조적인 부패,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조직범죄 등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증거이죠. 무엇보다, 러시아의 암울한 현실은 인구 감소에서 잘 드러납니다. 1990년에 1억 4천8백만명에 달하던 러시아의 인구는 현재 1억 4천3백만명으로 줄었고, 2050년까지 1억 1천1백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이러한 인구 감소의 원인은 보편적인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짦은 평균수명과 낮은 출산율 때문입니다. 게다가 많은 러시아인이 살기 좋은 다른 나라로 이민하니 인구의 감소는 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죠.

역사를 보면 살기 힘든 나라의 인구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이민족의 지배와 빈곤에 시달리던 19세기의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남부가 대규모 이민으로 인구가 줄어든 것은 대표적인 예죠. 그에 비해 살기 좋은 나라는 인구가 늘어납니다. 미국의 출산율이 선진국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는 사실은 아직 미국이 살 만한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죠(물론 이러한 상황은 빠르게 바뀔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60-70년대에 대규모 이민이 있었지만, 80년대 이후로 한국을 완전히 떠나 이민 가는 사람은 줄었습니다. 이는 한국이 점차 살기 좋은 나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사람 중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사실은 한국이 더는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0%대를 향해가는 낮은 출산율은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조용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살기 좋은 나라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좋은 삶을 누릴 자녀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자녀를 많이 낳기 마련이죠. 그에 비해 살기 어려운 나라에 사는 사람은 "이렇게 힘든 삶을 물려주기 싫다."라는 생각에 자녀를 낳지 않는 법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이 처한 인구 감소의 위기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의 개조가 필요한 문제입니다. 과연 한국이 살 만한 나라인지 아닌지는 앞으로 한국의 인구 증감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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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
이탈리아는 유서 깊은 역사, 풍부한 문화 유산, 맛있는 음식,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로 유명한 나라죠. 유럽을 방문한 많은 관광객이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이탈리아를 최고의 관광지로 꼽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죠.

그런데 이러한 이탈리아의 매력적인 모습 뒤엔 구조적 부패, 뒤틀린 가족제도,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사회적 모순 등이 숨어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관광객은 볼 수 없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절실하게 느끼는 현실이지요.

얼마전 뉴욕 타임스는 풀죽은 이탈리아, 실망의 아리아를 부른다 (In a Funk, Italy Sings an Aria of Disappointment)라는 기사를 통해 이탈리아인들이 느끼는 삶의 어려움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뉴욕 타임스에서 노령화로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 이탈리아의 상징으로 선택한 사진)

이 기사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이탈리아를 최고의 관광지로 꼽지만,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은 서유럽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낮은 국민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문제점은 과거의 잘못이 해결이 안되고 그냥 그렇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점이지요. 정치적으로 이탈리아는 내각제인데, 내각제의 장점은 다양한 정파가 협상과 타협을 통해 원만하게 정부 운영을 한다는 점이지만, 이탈리아처럼 정치인의 부패가 심한 나라에서는 다양한 정파가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만 연합하기 때문에 정치 개혁은 늘 말로만 끝나고, 똑같은 부정부패 정치인이 권력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덴마크인의 국회 신뢰도가 64%인데, 이탈리아인의 국회 신뢰도는 36% 밖에 안된다는군요 (한국은 얼마일찌 궁금하네요).

경제적으로는 이탈리아 특유의 전통 유지 정신 때문에 문화 유산은 많이 유지되는데, 인터넷 경제 같은 새로운 흐름은 제대로 발전을 못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제대로 발맞추지 못하다 보니 경제 발전도 늦어져서, 과거에는 영국을 추월했던 이탈리아 경제가 이제는 한때 서유럽의 후진국이라 불리던 스페인보다 뒤지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이탈리아 사회는 2차대전 이후로 늘 같은 문제로 고민하지만 아무도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이제 사회 노령화가 심해지면서 (이탈리아의 출산율은 유럽 최저 수준입니다) 미래에는 상황이 좋아지리라는 희망조차 잃어간다는 점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암울해도 희망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는데, 이탈리아는 희망을 잃은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저도 이탈리아에 몇 달간 머물러 보니까, 이탈리아 사회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체국에서 우표 한장을 사려고 해도 길게 줄을 서야 하고, 그나마 우표가 떨어진 우체국도 많았습니다. 길거리의 이정표는 가야할 방향의 반대 방향을 태연히 가리키는 경우가 허다했죠. 학비가 싼 대신, 학생의 특권을 누리고자 대학을 10년 이상 다니면서 특별한 직업을 갖지 않는, 젊은이 답지 못한 젊은이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남부의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여행해보니 북부의 밀라노와는 전혀 다른, 무질서하고 가난한 모습이였죠.

이탈리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을 괴롭히도록 고안된 것 같은 행정체계였습니다. 밀라노에 사는 교포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에서 외국인 등록을 하려면 집주인에게 거주 확인서를 받아야 하는데, 집을 구해 거주 확인서를 받으려면 외국인 등록이 되어 있어야 한답니다. 이탈리아에는 이처럼 정상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합리한 행정이 너무나 많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꼼수를 부리며 살아야 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한국도 이탈리아와 비슷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낮은 출산율, 뒤틀려진 가족제도, 구조적 부패 등). 현재 똑똑한 이탈리아 사람은 조국에 대한 희망을 잃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많이 간다고 합니다. 한국도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의 생계형 이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이민 가죠. 부디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이민을 떠나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이민을 오고 싶은 나라로 탈바꿈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세대 뿐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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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m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