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나 관계에 기초한 집단(Gemeinschaft)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족입니다. 가족은 이익을 넘어서는 집단이고, 건강한 가족이라면 가족 구성원이 가족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Gemeinschaft)의 개념이 사회(Geselschaft)의 개념으로 대치되는 흐름 속에서 가정의 의미도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바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죠.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들은 어머니를 놓고 아버지와 겨루고, 딸은 아버지를 놓고 어머니와 겨루는 관계 속에 삽니다. 이는 개인은 가족 속에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산다는 뜻이죠. 이러한 관점은 가족을 이상적인 사랑과 질서의 공동체로 보는 유교의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가족을 모델로 사회를 재구성하기 원했던 유학자들은 사회의 모범이 될 가족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렸고, 그에 비해 구성원의 이익 추구를 집단의 존재 이유로 보는 시각이 강한 서구 문화에서 자라난 프로이트는 가족조차 이익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한 것이죠.

가족을 이익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결혼에 대한 일반의 의식도 바뀌게 됩니다. "결혼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유교의 관점에서 답하자면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부모가 나의 결혼을 원하고, 결혼을 함으로 가족 구성원의 숫자를 늘려 가문의 세력을 키워야(농경 사회에서 노동력의 향상은 곧 부의 증가를 뜻했습니다) 하기 때문에 결혼해야 한다는 말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내가 결혼을 해서 행복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젊은이들은 부모가 짝을 지어준 사람과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이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나의 행복입니다. 만약 결혼을 해서 지금보다 행복이 줄어든다면 결혼할 이유가 없죠. 그러니 요즘은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행복한 결혼을 하자면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고(학력, 직장, 돈 등), 따라서 결혼 연령이 점차 높아집니다.

결혼이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결혼을 했다가 행복하지 않다면 결혼을 취소해야겠죠. 따라서 서양이나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는 이혼율이 높습니다. 또한,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다면 감정적, 재정적으로 손해가 크기 때문에 아예 결혼이라는 부담감을 제거하고 관계를 즐기기만 하려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금 유럽에는 결혼한 커플 만큼이나 동거만 하는 커플이 많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동거(concubinage)가 정상적인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기에 사회적으로 완전히 용납이 됩니다(예를 들자면,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사르코지와 대결을 펼쳤던 세골렌 루와이알이 또 다른 정치인인 프랑수아 올랑드와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살았다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혼과 동거는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동거를 하거나 이혼을 한다면 가정의 재생산이 안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개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동거나 이혼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으로 보이겠죠.

자녀출산도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가족관에서는 자녀출산은 부모의 의무였지만, 이익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녀를 낳았을 때 얻는 유익이 낳지 않았을 때 얻는 유익보다 커야 자녀를 낳겠죠.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자면 자녀를 낳았을 때 얻는 유익이 자녀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수고보다 더 값지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출산율이 점차 낮아지는 것이죠. 출산을 나의 이익이 아닌, 자녀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즉, 자녀를 낳았을 때 과연 자녀가 행복할 만한 환경을 내가 제공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묻는 것이죠. 물론 이 힘든 세상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고, 그렇게 보자면 자녀를 낳지 않을 이유만 하나 늘어날 뿐입니다. 그에 비해 옛날 사람들은 출산할 때 자녀의 행복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물론 피임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전통적인 사회에서 자녀 출산은 부부의 의무였고, 자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든 아니든 부모에게 효도할 의무가 있었을 뿐이죠.

이처럼 가족이 이익 집단으로 바뀌면서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많이 변했습니다. 문제는 이익의 관점에서 가족을 보면 결혼을 할 필요도 없고, 자녀를 낳을 필요도 없는데, 그렇다고 합리적 판단에 따라 가정생활을 거부한다고 꼭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해질 가능성이 크죠. 영화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에 나오는 "가정을 꾸리면 불행할 것 같아 결혼하지 않았는데, 아이와 함께 있는 부부의 모습을 보니 부러워서 눈물이 나더라"는 멕 라이언의 대사는 현대인의 고민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개인이 행복을 추구하느라 자녀를 낳지 않으니 국가 전체의 출산율이 낮아져서 결국 국가적 위기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익만 추구하는 태도가 과연 올바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지금 미약하게나마 "공동체 회복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이처럼 인간을 이익 집단에 속한 존재로 보는 관점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재] 사회와 공동체 5- 끝  (6) 2010/03/13
[연재] 사회와 공동체 4  (2) 2010/03/03
[연재] 사회와 공동체 3  (4) 2010/02/25
[연재] 사회와 공동체 2  (0) 2010/02/23
[연재] 사회와 공동체 1  (0) 2010/02/20
미국의 변화  (2) 2010/01/12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어제 프랑스 언론은 사르코지가 탑 모델 출신 가수인 카를라 부르니와 함께 디즈니랜드에서 목격되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르코지는 얼마전 세실리라와 이혼을 하였고, 그 후로 염문설은 몇 번 나왔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이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브루니는 이탈리아에서 출생했지만 프랑스에서  모델로 활동했고, 최근엔 가수로서도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사르코지의 정적인 세골린 루와얄을 지지한다고 하는군요.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르 피가로는 온라인에서 "브루니가 대통령 부인으로 적합한가?"하는 설문까지 실시하던데, 사르코지가 10월 18일에 이혼했고, 사르코지와 브루니가 처음 만난 것이 11월 23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벌써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너무 빠른 듯 하네요.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사르코지가 두 사람의 결혼을 서두르리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우선, 그는 2006년 세실리아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갔을 때, 즉각 안 풀다라는 기자와 연애를 시작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이른바 Speedy Sarko라는 명성에 걸맞는 행동이었지요. 또한 사생활을 보장하는 프랑스의 법률 때문에 지금까지 사르코지의 염문설을 전혀 보도하지 못했던 프랑스 언론이 이번 데이트 현장에 대해 마음놓고 보도할 수 있는 것은, 사르코지 측에서 언론에 접촉해서 대통령의 디즈니랜드 방문일정을 알려줬기 때문이죠. 즉, 두 사람은 몰래 데이트를 즐기다가 우연히 언론에 포착된 것이 아니라, 기자들 앞에서 다정한 모습을 모여주는 쇼를 한 것이지요.

그렇다고 사르코지가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하는 흉내를 낸 것은 아닐 듯 합니다. 비록 만난지 한 달도 안된 사이지만, 사르코지는 이미 결혼에 대해 어느정도 마음을 정했기에 다른 연인과는 다르게 부르니만은 언론에 노출시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요. 특히 언론은 부르니가 세실리아와 매우 닮았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굴은 별로 닮은 줄 모르겠지만, 키는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하네요 (세실리아 182cm, 카를라 부르니 180cm). 또한 세실리아도 모델이었고, 두 여인 다 부유한 예술가 가문 출신이란점도 같군요. 즉, 사르코지는 세실리아에게 "운명적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한 적이 있듯, 세실리아와 여러 모로 매우 비슷한 부르니에 대해서도 운명적 사랑을 느낀 듯 하네요.

하지만 사르코지가 기자를 초청해 데이트 현장을 공개한 까닭은 단지 부르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닌 듯 합니다. 5월에 대통령에 취임한 후, 프랑스를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인기를 누려온 사르코지는, 최근에 인플레이션의 심화로 지지율이 50%를 밑도는 위기를 겪는 중입니다. 따라서 사르코지는 이러한 위기를 타계하고자 제도 개혁, 대학 개혁 등을 포함하는 이른바 Sarkozy Acte II (사르코지 2막)를 준비중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정치 프로그램을 추진하는데 "아내에게 버림받고 독수공방하는 이혼남" 이미지 보다는 "새롭게 사랑에 빠진 열정남"의 이미지가 더 어울렸겠죠. 사르코지는 이번 기회에 가정적인 이미지까지 보여주려 작정한 듯 카를라의 아이들과 어머니까지 대동하고 디즈니랜드에서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아마도 그가 새 애인과 그녀의 가족과 함께 즐겁게 만나는 사진을 본 프랑스 사람들은 "그래, 우리가 바라는 가정적이고 믿음직한 대통령의 모습이야" 했을지도 모르죠.

사람이 살다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데, 사르코지는 정확하게 연인이 필요할 때 사랑에 빠질 상대를 만났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고 해야할찌, 아니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야할찌 모르겠네요. 이탈리아 유력지 Corrier della Sera의 희망대로 "또 하나의  위대한 이탈리아-프랑스 커플"이 탄생할찌 주목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파리 근교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2년 전 세계를 떠들석하게 했던 폭동과 거의 비슷한 양상이 진행중이군요. 폭동은 불만 때문에 일어나는 법인데, 2년만에 같은 폭동이 다시 일어난 것은 그때의 불만이 아직 해결 안되었다는 뜻이겠죠.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폭동이 일어난 지역은 파리 근교, 이른바 방리유 (banlieue)입니다. 방리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모인 곳입니다 (부유한 근교도 있기는 하지만, 가난한 근교가 더 많습니다). 프랑스는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도 다 책임을 지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라도 판자촌에 사는 일은 없고, 정부가 싼 값에 공급하는 임대아파트에 살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 사진은 2년전, 파리 폭동이 일어나기 몇달 전 제가 파리 근교의 아파트촌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 동네 사람들은 이 아파트를 까망베르 (동그랗고 납작하게 생긴 치즈 이름) 라고 부르더군요. 이런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치안이 안 좋기 때문에 조금만 돈이 있으면 이런 아파트에 살 리가 없지요.

프랑스 정부는 가난한 사람에겐 생활비도 일정부분 보조해 줍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도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죽지 않을 만큼의 의식주는 해결해 주니까요. 따라서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가난할 지언정 굶주리지는 않습니다.

이런 아파트촌엔 아랍계, 아프리카계 이주자들이 많이 사는데, 이들의 자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워낙 실업율이 높은데다가 아랍계나 아프리카계는 더욱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이들은 정부에서 공급하는 주택에서 정부에서 공급하는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근근히 살아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부에서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니 감사한 일 아닌가?" 하겠지만, 젊은 이들에게 삶은 지옥처럼 느껴집니다. 프랑스의 많은 백인은 부유하게 사는데, 이들은 인종차별의 벽 때문에 젊은 나이에 사회로 올바르게 진출하지도 못하고, 그냥 남들이 부유하게 사는 모습을 TV로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대학교에 많이 진학하지도 않지요. 따라서 이들의 문제는 사회의 차별이 아니라 이들의 게으름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말이 맞을찌도 모르지요.

이러한 이주자 2세들은 늘 가난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이들에게 정부의 보조금은 단지 이들을 길들이기 위한 마약처럼 느껴질찌도 모릅니다. 이들은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던 차에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10대 청소년들이 경찰차와 충돌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느껴 경찰을 공격합니다. 이것이 이번 파리 폭동인 것이지요.

프랑스인들은 프랑스가 미국과는 다르게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자면, "프랑스에 사는 이주자들은 인종차별에 대해 항의해서는 안된다"는 뜻도 되지요. 이주자 2세들은 큰 인종차별의 벽을 느끼는데,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해 항의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이번 폭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폭동이 일어난 원인을 이해하려면 남들과 동일한 존재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프랑스 이주자들의 한과 눈물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이혼했다는 소식은  아시는 분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혼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새로운 연인이 등장했네요. 그녀의 이름은 로랑스 페라리.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앵커우먼이지요. 프랑스는 한국과 비슷하게 앵커우먼이 사회의 중요한 관심 대상이라 거의 모든 국민이 이 사람을 알 것입니다.

페라리는 올 봄 대통령 후보였던 사르코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소식입니다. 결국 사르코지도 이혼을 발표하고, 페라리도 최근 이혼을 발표하면서 둘 사이가 드러나고 있다는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라리의 남편도 유명한 앵커인 토마 위그 인데, 14년이나 오손도손 잘 살다 갑자기 이혼을 했군요. 만약 사르코지 때문에 이혼한 것이라면 위그만 불쌍하게 되었네요.)

사르코지와 전처 세실리아의 이야기는 거의 3류 드라마를 연상케 합니다. 그가 시장 시절 26살 차이 나는 커플의 주례를 섰는데, 그 신부가 바로 세실리아였습니다. 둘은 나중에 사랑에 빠져 각각 배우자를 버리고 결혼을 했고, 2005년엔 세실리아가 사업가와 바람을 피고, 사르코지는 르피가로 기자와 맞바람을 폈습니다. 결국 세실리아가 사르코지에게 돌아옴으로 파경은 막았지만, 그 이후로도 둘의 관계는 회복이 어려웠나 봅니다. 사르코지가 페라리와 사랑에 빠져서인지, 아니면 그와 상관이 없이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 싫었는지 두 사람은 올 가을 이혼을 발표했죠.

프랑스 사람들은 나이가 몇 살이든 사랑에 빠지면 사회적 관습을 무시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대통령까지 그렇게 행동하니 한국 사람이 보기엔 좀 당황스럽습니다. 어쨌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찌 궁금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르코지와 전처 세실리아)




출처 - Daily Mail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
프랑스는 지금 운송노조 등의 파업으로 전국이 어수선한 상황입니다. 올해 대통령이 된 니콜라스 사르코지는 평소 이미지 답게 강격책으로 노조와 맞서는 중이고, 따라서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동아일보는 이런 강경한 지도력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설을 통해 사르코지를 "‘늙은 유럽’의 再起 이끄는 리더십"으로 찬양하였습니다. 아마 조중동의 사설 패턴에 익숙한 분은 그 다음에 어떤 말이 나올지 미리 짐작이 가실 겁니다.

한국은 지금 어떤가. 이들 3개국보다 훨씬 빨리 ‘조로증()’ 에 빠졌다. 공공부문은 여전히 ‘철밥통’이고, 공공과 민간을 통틀어 정치적 파업을 포함한 불법 파업이 기업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 국민의 차기 정부 선택이 임박한 이 시점에도 대선 후보들의 리더십 경쟁은 찾아볼 수 없고, 정치권의 관심은 ‘범법자 김경준의 입’에 쏠려 있다.

역시나, 유럽은 이렇게 잘 되는데, 한국은 박정희 같은 지도자가 없어서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다. 그런데 김경준 때문에 사르코지 뺨치게 강경한 태도를 보일 불도저 같은 지도자를 포기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한국 위기론"과 "위기의 한국을 구해낼 것은 보수파 후보"라는 공식이지요.

그런데 사르코지가 한국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가? 지난 봄, 그가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다가 했던 말입니다.

아시아의 용, 남한의 경제적 다이나믹을 좀 봐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원문

네, 동아일보는 사르코지 같은 대통령이 한국을 프랑스 처럼 만들길 원하지만, 원조 사르코지는 프랑스가 한국 같이 되길 바라는군요. 대단한 역설입니다.

사실 지난 10년간 한국 경제의 발전은 눈부셨습니다. 빈부차가 벌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국민 대다수가 실질적으로 더 가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10년전 한나라당 (신한국당)의 국정운영 실수로 일어난 외환위기를 극복하였고, 경제를 다시 살려낸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그런데 보수언론이 늘 떠드는 것은 "한국은 이제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세계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선 관심도 없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위기를 과대포장하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나라가 많은 위기 가운데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은 대통령이 강성노조에 휘둘리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이 재벌에 휘둘리기 때문에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기 해결을 위해선 재벌에 휘둘리지 않을, 청렴한 대통령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비리 문제 같은 건 덮어 버리고 무조건 강한 지도자만 뽑으면 된다는 생각은 박정희 향수병에 젖은 커다란 착각일 뿐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블로그를 Hanrss에서 구독하세요-->

Posted by cimio